우리 열차는

by 이주희

우리 열차는 동묘앞 행입니다.


늘 듣고 보는 열차 안내 글귀가 그날따라 새롭게 다가왔다. 열차에 분명 사람의 마음 같은 건 없을 터인데, 굳이 ‘이’ 열차라고 하는 대신 ‘우리’ 열차라고 부르자고 한 건 누구였을까? 누군가를 칭하거나 내가 다니는 학교, 직장을 그 이름이나 ‘이’, ‘그’ 등으로 부르는 것보다 앞에 ‘우리’를 붙이면 훨씬 정겹고 친근한 마음이 든다.


눈을 들어 1호선 같은 객실 안에 탄 사람들을 한 명씩 바라보았다. 장미무늬를 반짝이는 실로 수놓은 검은색 바지를 입은 아주머니는 상의와 가방도 어지럽게 각기 다른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했다. 대각선 임산부 석에는 아마도 검은 패딩 점퍼로 그 사실을 가렸으리라 짐작되는 초기 임산부가 앉아있었고 그 옆에는 얼굴이 불그스름하고 쇼트커트를 한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이와 맞지 않게 철없는 소년 느낌을 풍기며 앉아있었다. 설연휴 마지막날 열차 내부는 한산했는데, 신길 역 환승구간부터 같은 길을 걸어온 남자는 펑퍼짐한 회색 운동복에 패딩조끼를 입어 안 그래도 뚱뚱한 몸이 더 부해 보였다.

만에 하나 열차에 사고가 나 모두 나갈 궁리를 하며 말을 나누게 된다면, 과연 이중 누구라도 ’이 열차‘ 대신 ‘우리 열차’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니 아마도 그럴 사람은 여간해서는 없을 것 같다. 더불어 요즘 들어 더 극렬해진 좌와 우, 세대와 성별 간의 갈등도 불쑥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우리’라는 말은 지하철 안내방송에서나 볼 수 있는 오래된 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누구와 ‘우리’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교사이기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어떤 쪽을 지지하기 때문에, ‘우리’ 보다는 우리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거기 지하철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어떤 한 면으로는 나와 대척점에 서 있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성별일 수도, 나이일 수도, 외모일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과 ‘우리’가 되지 못할 이유를 헤아리다 내렸다. 거기 있던 누구와도 같은 ‘우리’가 될 생각 없이 ‘우리’ 열차를 내린 셈이었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우리’라는 다정한 말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다. 모두가 ‘우리’를 잊고 편을 나누는 요즘, ‘평화’와 ‘통일’이 자꾸 멀어져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