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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Jun 11. 2024

산다는 건

 수요일 3교시, 교과실로 향하던 중 저 멀리서 크게 학생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우리 반이 가려는 그곳에서 들리나 싶던 그 소리에는 어른의 목소리도 섞여있었다. 학생들을 들여보낸 후 소음의 진원지를 찾아 올라가 보았다. 2층 복도가 끝나는 곳에 키가 큰 한 아이를 선생님께서 몸으로 제압하고 있었고, 아이는 그런 선생님을 보고

 "이 도깨비야! 좀비야!"

 라며 반말로 크게 대들고 있었다.


 학기 초부터 힘들어서 들어본 적 있던 그 아이였다. 오죽했으면 교장선생님께도 소식이 알려지고, 계속해서 공격적으로 돌발 행동을 할 경우 가정으로 보내기로 약속을 했다.

 점심시간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급식실로 오는 사람은 알고 보니 그 아이의 아버지였다.




 생활업무를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모인 단톡방에서는 '학교폭력책임교사제'라는 직함이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이름이라는 이유에서다. 학교폭력담당 업무를 하는 선생님들 중에 학부모와 각을 세우고 감정적으로 힘들어지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괴로운 일을 자주 겪는 사례들을 토로하는 가운데, 한 선생님이 이와 같은 말을 해주셨다.


얼마 전 사주를 보고 온 동생이 그러더군요, "남에게 베푸는 것은 사소하게나마 공덕을 쌓는 것이고, 내가 남에게 베푼 덕이 상처로 되돌아왔을 때 그게 바로 나의 업을 씻어낸 것"이라고요, 저는 벌써 2년째 학교에서 공덕을 쌓으며 때론 업보를 씻어내기도 하는 겁니다. 이렇게 또 한 해 가는 거지요, 내년은 올 12월부터 생각하자구요^^

 남에게 베푼 덕이 상처로 돌아오면 그게 나의 업을 씻어낸 것이라니. 너무 무서운 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배신을 당했을 때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는 말이기도 했다.

 힘들 때 '전생에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저 말과 어느 정도는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매일을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스스로를 보면 어떨 때는 지난날의 내가 교만했다는 반성도 든다. 그것이 다 내 업보일까, 혹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을까?



 

 교사와 학생 틈바구니에 자녀의 손을 잡고 급식실에 오는 그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분도 예전의 나처럼 업보를 생각하고 있을까. 살다 보면 괴로운 일이 나를 짓누르곤 한다. 다는 것의 의미는 사실은 없는 것일까? 나는 쇼펜하우어도 되었다가, 억겁의 전생을 가진 불교신자도 되었다가 한다. 그러다 그저 지금을 잘 살아내자고도 다짐하며 웃어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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