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에 답장이 오는 데 반나절이 걸리고, 매일 오던 전화를 서로 걸지 않은 지 10일쯤 지난 때였다.
‘바빠서 그렇겠지.’
라며 애써 괜찮아지려고 애썼지만 그러기에는 이별의 사인이 너무 많았다.
혼자 속 끓으며 있기보다 세상으로 나가기로 했다. 하와이에서 본 노부부의 탱고, 애틀랜타에서 잠시 구경했던 밀롱가, 작년에 감동받은 고상지 공연에서의 탱고 공연을 떠올리며 호기롭게 하루 전날 탱고 일일체험을 혼자 신청했다.
주말에 무언가를 배우러 남자친구 없이 홀로 가는 게 연애하고 거의 처음이었다. 나에게 관심이 없어진 남자친구를 기다리며 속상하기보다 시험 낙방으로 멘탈이 순두부가 된 나를 일으키는 좋은 처방일 거라는 기대를 잔뜩 했다.
장소는 신사동의 한 지하 연습실이었다. 전날 챗지피티에게 탱고 일일체험에 적합한 의상과 신발을 물어보고, 최대한 무난한 옷을 입고 도착했다. 나름대로 탱고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색인 검은색 반팔 남방과 신축성이 좋은 검은색 여름 긴치마였다.
그렇게 아래위로 시커멓게 걸치고 약속 시간보다 20분을 일찍 도착했다. 일일 체험 예정 시간 전에 다른 반 수업이 있다고 했던 것 같아 연습실로 불쑥 들어가기가 주저됐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출입구 앞에 서 있는데 회원으로 보이는 키 큰 여자분이 눈으로 무슨 말을 하려다 연습장으로 쓱 들어가 버렸다.
십 분을 그 자리에서 눈을 들어 동네 구경을 했다. 맞은편에는 그 건물이 생겼을 때 오픈했을 것처럼 오래되어 보이는 슈퍼가 있었고, 대각선으로는 사람들이 줄 서는 새 피자집이 있었다.
용기를 내어 지하로 살금살금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얼어있는 내게 여자 선생님이 다가와 친절하게 오늘 처음 오신 분이냐고 했다. 마음의 부담이 반으로 녹는 것 같았다.
잠시 연습실 뒤편 의자에 앉아 연습에 열중하는 예닐곱 명의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역시 탱고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춰 함께 움직이는 가운데 느껴지는 우아함이 멋있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다리를 이런 모양으로 모아요. 그래야 힘을 느끼기 좋거든요.”
기본 스텝은 ‘6 살리다’라고 하는데 여섯 박자만에 두 발을 처음처럼 모으고, 다시 반대 발부터 새 스텝을 진행해 나가는 식이었다. ‘살리다’는 아르헨티나 어로 ‘출구’라고 했다.
가장 기본이라는 그 스텝으로 나는 첫 탱고를 경험했다. 맞잡은 손의 압력에 나도 힘을 주고 순응하니 몸이 움직여졌다. 신기했다.
시선은 상대방의 목이나 입처럼 사람의 왼쪽과 오른쪽을 나누는 중앙부를 바라보면 된다고 했다. 눈을 마주 보며 추는 춤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깨를 펴고 상체를 열어 똑바로 자세를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내가 자꾸 몸이 한쪽으로 치우친다고 남자 선생님께서 알려주었다. 그 말이 마치 조금 더 가슴을 펴고 살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수그리고 살고 있냐고 묻는 것 같아서 조금 슬프게 들렸다.
처음 구경하러 온 사람에게도 연습실에 있는 사람들은 한없이 따뜻했다. 덕분에 탱고는 멋있기도 하지만, 한 인간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 사람의 체온을 느끼는 인간적인 춤이란 걸 느끼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볼 일 없는 현대 사회에서, 타인의 손을 직접 잡아봄으로써 내가 평소에 업무적으로나 사적으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닌 피부 밑으로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한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분의 손은 꼭 데워놓은 토스트 같아서 춤을 추다가 그만 손을 놓고 싶기도 했다. 사람들은 비슷해 보여도 저마다의 온도가 다르다는 걸 오래 잊고 살았다.
수업이 끝나고 매주 열리는 정기 모임이 있었는데, 오래된 회원 한 분이 말했다.
“여기는 춤을 추러 오는 곳이어서 서로 정확한 나이나 직업을 묻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취미긴 하지만 계속해서 연습을 해야 꾸준히 잘할 수 있어서 좀 신기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 연습 없이 거저 얻어지는 건 별로 없는 것 아닌가? 갑자기 앞으로 맹렬히 그리고 꾸준히 탱고를 연습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올랐다.
결국 그 자리에서 8주짜리 초급반을 등록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가려던 내게 선생님이 발사이즈가 뭐냐고 물어보며 A4지에 발 본을 그렸다. 가죽으로 된 댄스화를 다음 주까지 맞추기로 했다.
“본인 생각에 본인이 잘 추는 것 같지 않아요, 처음인데?”
글쎄, 무척 즐거웠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잘 추는 걸까? 두 달 전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당시의 선생님도 내게 ‘합격권’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 말을 믿어서는 안 됐을 것 같아 탱고 선생님의 말도 대번에 의심이 됐다.
“저요? 저야 모르죠. 처음 왔는데. “
그러자 자신은 수많은 사람을 가르쳐보지 않았겠냐고 한다. 하지만 아직 알 수 없다. 내가 탱고를 시작한 일이 잘한 일인지 아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