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디베어 목걸이

by 이주희

아침에 무심코 세탁물을 가지러 현관문을 열었더니 한 야구팀 로고가 그려진 상자가 꽃과 함께 놓여있었다. 별로 들고 들어가고 싶지 않았으나 꽃이 더위에 시들해 보여 얼른 옮겨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그 상자에 무엇이 있을지 알고 있었다.

야무지게 포장해 놓은 상자를 열어보니 역시 지난번에 받지 않은 구단 유니폼을 입은 인형 두 개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미리 사놓고 내게 주지 못한 차량 관리 용품 몇 가지와 새 스와로브스키 목걸이도 들어 있었다. 긴 편지와 함께.

‘미안해, 용서해 줘.’와 같은 내용일까 잠시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거기엔 우리가 헤어질 때 앙금 그대로, 낯선 경어로 적어간 건조하고 차가운 말이 글자로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든 물건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며, ’ 자기 마음 편하려고 ‘ 넣은 거니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다는 말이 여전히 날 서 있는 그의 마음을 잘 보여주었다.




“취향이 확고하시네요.”

받은 날 하고 나간 그 테디베어가 달린 목걸이를 보고 탱고 정모 때 한 서글서글한 눈매의 여자분이 말을 걸었다. 큰 키에 긴 원피스를 입은 나와 목에 걸린 목걸이의 분위기가 달라서였을까?

“선물 받은 거예요.”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그에게 이전에 비슷한 목걸이를 받은 얘기도 하게 됐다.

“아~ 김치찌개 집에 김치찌개가 맛있듯 알게 된 취향 하나만 파는구나?”

재미있는 전개였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그날 아침 그 상자에 관해 들려주니, 옆에서 듣던 어떤 분이

“그럼 이별 선물?”

이라 덧붙였다. 하지만 세상에 누가 이제 안 볼 사람에게 선물을 준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어쩌면 그는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정정하게 된다.

헤어지고 3주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드는 느낌은 ‘졌다’. 나는 스스로 이번 연애를 잘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정모가 끝난 후 모두가 뒤풀이를 갔지만 나는 그런 기분으로 참석할 수가 없었다. 현관문을 닫고 집에 들어오니 그에게 전화를 해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전화를 해 보았자 여전히 나는 그가 나에게 어떤 부분을 서운해하는지 알 수 없으리라는 체념이 들었다.




하루가 지나 다음 날 저녁에야 간단한 답장을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꼭 답장이 오지 않아도 좋을, ‘잘 지내’로 끝나는 메시지였다. 이제야 조금 선명하다. 나는 그를 연인으로서 싫어하지 않는다. 그저 너무 애쓰다 혼자 사그라진 그가, 너무 바쁜 그가 이제는 자기 시간을 나 없이 오롯이 필요한 곳에 충분히 사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무리하게 늘 옆에 있어주려 하던 그가 언젠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마음의 연습은, 나중에는 자꾸 잊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자주 되뇌던 다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나 없는 무한한 시간을 ‘이별’이라는 형태로 선물한 거라고 생각해볼까 한다. 나 없이, 신경 쓰이는 사람 없이 어디도 얽매이지 않고 불편한 마음도 들 필요 없이 지내라는 선물. 준 선물을 뺏으면 안 되기에 오늘부터는 조금 더 그를 빨리 잊으려고 노력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