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를 배운 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내가 들어온 이후 다른 신입 회원이 많이 늘었다. 초급반에 들어오면 몇 기 몇 기 하는 기수가 생긴다. 나도 이제 후배 기수가 생긴 셈이다.
스페인어로 남자를 ‘로’, 여자를 ‘라’라고 하여 탱고를 추는 남자는 ‘땅게로’, 여자는 ‘땅게라’라고 부른다. 탱고의 재미를 붙이고 배운 지 오래된 땅게로분들은 그러지 않는데, 어느 동호회나 그렇듯 여자 만나러 온 남자 회원들이 있다.
배가 둥그렇게 나와 이미 마주하고 섰을 때부터 부담스러운데 춤을 출 때마다 너무 몸을 가까이 바짝 붙이는 한 신입 회원이 있다. 그를 처음 본 건 지지난주 정모 때인데 자신은 제자리에 앉아 옴짝달싹 못하면서 춤추던 내 몸을 눈으로 연신 바쁘게 스캔하던 게 딱 보였다. 그런 그가 지난주 정모 때는 두 번이나 까베세오(눈을 마주치고 춤을 신청하는 일)를 해서 싫지만 어쩔 수 없이 6곡을 함께 춰야 했다. (참, 지난번에 여자는 남자의 까베세오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여자도 남자에게 까베세오를 할 수 있습니다. 저도 몇 번 해봤어요.)
배운 지 얼마 안 되어 플로어의 흐름에 전혀 맞춰 가지도 못하면서 이 남자는 몸은 최대한 밀착한 채 눈을 감고 점점 이상한 곳으로 갔다. 춤을 추던 다른 분과 부딪히기 일보 직전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런데도 이 사람, 눈을 감고 혼자 음악을 흥얼거린다.
탱고는 두 사람의 춤이다. 상대방을 계속 응시하며 평행을 맞춰가야 하는데, 저 사람처럼 눈을 감고 추는 게 괜찮은가? 다음에 선생님께 여쭤봐야지.
불쾌감의 끝판왕은 음악이 끝나고 나서였는데, 동의도 하지 않은 나를 두 팔로 안았다. 춤이 끝나고 상대와 다정하게 포옹하는 일은 자주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잘 하지 않는 편이었고, 그 남자와는 더더욱, 절대 하기 싫었는데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러고 나서 내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춤신청을 한 그는 부끄러움은 1도 없이 내게 뒤풀이를 가냐고 당당하게 물었다.
분명 내가 간다고 하면 따라올지도 몰랐다. 한 50퍼센트 정도의 촉이다.
애초에 별로 갈 생각도 없었지만 이러저러해서 안 갈 거라고 못을 박았다. 나갈 때 같은 길을 걷게 될까 봐 일부러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제발 빨리 나가라, 제발 빨리 나가라.
춤추러 왔으면 곱게 춤만 췄으면 좋겠다. 불쾌한 작업 어쭙잖게 걸지 말고. 무엇보다 배려와 예절을 중시하는 탱고라는 춤을 이런 멋도 모르는 풋내기가 와서 훼손시키는 게 너무 싫다.
이날 내가 열받은 남자는 이 사람이 끝이 아니었다. 첫 체험으로 중년의 과장님처럼 까무잡잡하고 커다란 금테 안경을 낀 분이 오셨다. 초급 수업 시간에 같이 연습을 해 보니 우리 동호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탱고를 좀 배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죄송한데, 땀을 좀 닦아도 될까요?
연습실 안 모든 사람들이 흘리는 땀의 양보다 더 많은 양이 그의 온 얼굴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지 호주머니에 물건을 좀 빼보세요.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발견하고 지적을 하니 그제야 지갑과 차키 등 묵직한 물건들을 빼고 돌아왔다.
덕분에 연습하다 말고 기다렸다.
처음 연습실에 왔던 나처럼 이분도 정모 시간이 무르익자 수업을 등록하였다. 그리고 바로 나에게 첫 춤신청을 하러 왔다.
로가 초급자 단계에서 라보다 어려움이 많다는 걸 알기에 도와드리자는 마음으로 응했다. 그러나 그런 선의의 마음도 잠시, 그 남자가 말했다.
춤이 어렵지요? 긴장을 풀고 잘 따라와 보세요.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난다. 그 남자는 자기가 처음 와서 리딩을 제대로 못하고 있으면서 나보고 춤이 어렵냐고 거꾸로 묻고 있었다.
아니거든요! 오늘 춤이 마음대로 잘 춰지는 건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 온 당신에게 그런 소리 들을 만큼은 아닌데요! 그리고 당신 리딩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지금? 이렇게 플로어를 헤매고 있는데. 제 탓이라는 건가요?
나는 그 풋내기 회원의 당당함인지 뭔지에 기가 막혀버렸다. 동호회에 놀러 와서 진짜 부장님을 모시게 될 줄이야.
다음날 일정이 있어 뒤풀이를 가기 힘들기도 했지만 이 두 남자 때문에 나는 심정적으로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이 주 뒤면 초급반이 있는 토요일 말고 다른 요일 수업이 개설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춤신청을 거절하기 힘든데 피해 다니는 것 외에 뭘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뭐가 뭔지 모르는 저 두 남자분, 얼른 탱고의 기본 매너를 익히시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한두 달 안 본 뒤 여전히 수업을 듣고 계시면 좀 나아지려나. 제발 눈에 보이는 뻔한 작업 금지! 추파 금지! 고나리도 참아주세요.
재미있게 춤만 추고 싶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