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온도

by 이주희

그가 집 앞에 놓고 간 꽃 중에 두 송이를 덜어냈다. 보라색 카라는 녹다시피 하며 키가 작아지는 중이었고, 지나치게 큰 같은 색 모란도 일부가 까맣게 타버렸다. 지난 토요일 새벽 더운 열기에 처음 봤을 때부터 시들했던 이별 선물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남은 두 송이 꽃이 하얗다는 이유로 마치 사망한 지난 연애에 조의를 표하는 것 같은 화병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말 안 듣는 아홉 살들과의 전쟁이 끝나자마자 조퇴를 내고 근처의 큰 도서관을 찾아갔다. ‘실연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이라는 우연히 아침에 눈에 든 책을 빌렸다. 도서관이 어찌나 큰지 문학은 2층에 따로 모여있었다.

펼쳐든 책의 앞부분이 재미있어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오늘같이 일찍 퇴근한 날,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놓고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 좋겠다 싶어 집 근처 새로 생긴 곳으로 가 보았다. 디카페인 커피도 있고 디저트도 맛있었지만, 좌석의 경도와 높이가 책 읽기에 편하진 않아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게다가 에어컨 바람이 차고, 주인 분이 디저트를 포장하며 나는 접착제 소리도 너무 신경 쓰였다.


집에 와 저녁을 먹고 그 책을 끝냈다. 어딘지 서늘한 집 공기가 이상해서 책을 다 읽을 때쯤 참지 못하고 가 보니 에어컨을 깜빡 잊고 끄지 않아 추울 때까지 찬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내 정신!


책을 덮고 우리의 헤어짐을 생각해 보았다. 난 이혼 경력과 두 딸이 처음부터 미안했다. 그가 그로 인해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괜찮다고 그가 말해주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해 마음속 깊이 갚지 못한 부채는 이별의 결심을 내리는 데 한몫했다.


뒤늦게 에어컨을 끄며 추운 카페에 앉아 나가고 싶다고 생각한 일을 떠올렸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도 차갑게 식게 할 만큼 마음이 차가운 사람이 되기는 싫다.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습도로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마음을 가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인과 헤어졌다고 해서 너무 찬바람이 쌩 부는 얼음 같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그건 스스로를 피폐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와 닮아가고 싶지 않아서, 그보다 나를 더 아껴서 그와 헤어진 것도 있다. 그러니 다시 따뜻하게, 나답게 속 안을 채우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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