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m perignon
보통 샴페인 한 병 만드는데 몇 종류의 포도를 섞어 만들까요?
메이커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세 가지를 섞어 만듭니다.
샤도네이(Chardonnay), 피노누아(Pinot noir), 피노 메니에(Pinot Meunier).
각 포도마다 맛과 향이 달라요. 그래서 이 세 가지를 적절히 섞어서 풍부한 맛을 만든답니다.
그런데 가끔 톡 쏘는 함흥냉면 말고 심심한 평양냉면 먹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단일 품종으로 만든 샴페인을 선택해 보세요.
먼저 샤도네이 100프로로 만든 샴페인을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이라고 합니다. 불어를 직역하면 '흰 포도로 만든 흰 술' 정도 되겠네요.
비슷하지만 반대되는 개념으로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가 있답니다. 이건 피노누아 100프로로 만든 흰 술인데, 피노누아가 검은색을 띄어서 이렇게 이름 붙인 것 같아요. 블랑 드 누아는 아직 제대로 시음할 기회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대신 블랑 드 블랑은 델라모트(Delamotte) 일반 샴페인과 블랑 드 블랑 두 가지를 사서 비교 시음해 본 적이 있어요. 술도 기분을 타는지 블랑 드 블랑을 처음 마실 때는 입가에 깨끗한 맛이 딱 떨어지고 얌전한 느낌이 괜찮더라고요. 그런데 다음번에 또 블랑 드 블랑을 마셨더니 원래의 풍부하고 묵직한 맛이 그립더라고요.
지난번 소개해드린 폴 로져 블랑 드 블랑은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는데, 앞으로 살면서 꼭 맛보고 싶은 와인 중 하나입니다.
샴페인 라벨을 보시면 대체로 생산연도가 적혀있지 않은 걸 알 수 있으실 거예요. 이걸 넌 빈티지(non Vintage, NV)라고 합니다. 여러 해에 모아둔 와인을 섞어서 만드는 방식이지요. 혹시 어느 해에 흉작이 들지도 모르고 그 해 기후에 따라 와인 맛이 조금 바뀔 수도 있으니 맛의 통일성 차원에서 이렇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산 샴페인, 도대체 얼마 동안 묵어있다가 세상에 나왔을까요?
최소 15개월 이상, 그러니까 1년 하고도 3개월이라는 기간을 숙성하기로 샹파뉴 내 규칙으로 정해놓고 있어요. 보통은 2년에서 3년 정도 숙성시킨다고 합니다. 당장 작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게 아니라는 거, 아셨죠? 재작년에 수확한 포도인지 그 전인지는 샴페인마다 조금씩 다르고, 고가의 와인일수록 그 시간은 한참 전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건 여담인데 샴페인 숙성기간 중에 발생하는 탄산가스 때문에 예전부터 그 많은 샴페인 병을 손으로 일일이 조금씩 돌려주는 작업을 했다고 해요. 포도 수확부터 숙성까지 이쯤 되면 샴페인 한 병에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지요. 이렇게 많은 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만큼 값지고 맛있는 샴페인이 탄생하는 거겠죠.
고급 샴페인의 대명사인 돔 페리뇽(Dom Perignon)에 대해서도 조금 알아볼게요.
돔 페리뇽은 당시 샹파뉴 지방의 한 수도원에서 와인을 만들던 ‘피에르 페리뇽’ 수도사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수도사는 미각이 남달랐고, 평생 성실하게 품질 좋은 와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가 탄산가스를 이기지 못하고 터지는 와인병 사이에서 처음 샴페인의 진미를 맛보았을 때,
“형제님. 어서 와보세요. 저는 지금 은하수를 마시고 있어요!(Brothers, Come Quickly! I’m Drinking Stars!)”
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무척 유명하지요. 이 표현은 아직도 샴페인을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곤 합니다. 샴페인을 따를 때 ‘촤아’ 하며 흩어지는 탄산 기포가 마치 별처럼 보인다는 뜻이었겠지요. 맛은? 맛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모엣&샹동 와이너리가 새로 출시한 고급 샴페인을 그의 이름을 따서 돔 페리뇽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모엣&샹동은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 인수합병을 지금의 거쳐 LVMH(Moët Hennessy·Louis Vuitton S.A.)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돔 페리뇽은 시계, 화장품, 가방 등을 아우르는 수많은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이 LVMH에 속하는 거죠. 한 수도사의 이름을 딴 샴페인이 디올, 펜디 등 유명 명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 참 신기해요.
돔 페리뇽은 피노 메니에를 섞지 않고 샤도네이와 피노누아로만 만든다고 합니다. 피노 메니에를 배제해 단맛을 줄인다고 하네요. 지난 시간에 제가 샴페인의 맛을 알 수록 단맛이 없는 쪽을 마시게 된다고 말씀드렸죠?
만화 ‘신의 물방울’에 이 돔 페리뇽이 등장한 이후 일본에서는 거의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얻었나 봅니다. 그래서 일본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면세점에도 돔 페리뇽이 입점되었고, 제주도 여행을 가면 한 병씩 사 오는 ‘면세 술’로서의 자리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수십만 원짜리 샴페인은 최소 십 년 이상의 기다림을 필요로 합니다. 출고 이전에 7년을 이미 숙성해서 시장에 나오지만, 구매한 이후에도 최소 3년 이상은 기다려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멋도 모르고 사서 바로 마시면 다른 샴페인과 별반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10년 후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만든 술이니까요.
저는 2010 돔 페리뇽을 마셔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 시중에 가장 많은 빈티지도 아마 이 2010일 거예요.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큰 감흥이 없었어요.
‘왜 굳이 이 돈을 주고서까지?’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제 생각엔 일본에서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너무 과대평가되어있지 않나 싶어요. 차라리 이걸 마실 바엔 마음 편하게 10만 원 이하 샴페인 두 병 먹겠다 싶더라고요. 어쩌면 제가 마신 돔 페리뇽도 조금 더 숙성의 기다림이 필요했던 걸까요? 저는 모엣&샹동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긴 합니다.
다음에는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샴페인을 살펴볼게요. 제가 마시는 그 와인을 마돈나가, 브래드 피트가 마신다고 생각하면 신기한 기분이 들곤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