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자라섬에 가려던 계획이 일행의 사정으로 인해 갑자기 취소됐다. 아무 약속도, 갈 곳도 잡지 않았는데 1박 2일이라는 시간이 허공에 붕 떴다. 집에 혼자 있어봤자 심신에 좋을 게 없다 싶어 고민 끝에 홀로 호캉스를 가기로 했다. 오랜만의 짧은 나홀로 여행이었다.
쌍쌍이, 또는 가족이 호텔 곳곳에 빼곡한 가운데 홀로 와인도 한 잔 하고 다음날 루프톱 수영장에도 올라갔다. 가는데 마다 보이는 그들한테 다행히 그다지 부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혼자라는 건 사람으로 인한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했으므로.
잠깐의 웃음과 기쁨을 위해 나머지 숱한 시간을 서로 얼마나 참고 견뎌야 하는지. 그게 바로 ‘함께한다’라는 말의 이면이다. 아,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아직 나는 다른 사람과 섞일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혼자 아침에 먹을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러 나가며,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 해도 나는 평온할 수 있구나.'
싶었다. 어쩌면 이 평온한 상태를 행복이라고까지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만에 하나 그러하다면, 혼자 지낸다는 건 달리 말해 어느 정도의 행복감이 보장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하루 기뻤든 슬펐든 당분간은 그 이유를 나에게서 찾고 싶다.
사람은 다양한 이유로 떠난다.
나의 경우 여행이란 끝이 있는 몇 박 몇 일의 짤막한 '삶'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매번 떠나는 여행마다 완벽하고 싶었다. 그것은 곧 나의 짧은 '삶'이었으므로. 사사건건 나를 조정하려 드는 부모님을 떠나 오롯이 그 짧은 ‘삶’의 주인이 된다는 일은 그만큼 부모님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내보일 기회기도 했다.
덕분의 나의 여행은 어딜 가서 무얼 먹고 무얼 봐야 할지, 날짜별로 정해놓은 리스트가 늘 빼곡했다. 막상 유명하다는 곳에 가서 실망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다음 스케줄을 생각하느라 그 실망을 곱씹을 여유조차 별로 없었다. 그런 나였기에 일생일대의 신혼여행을 와서는 아무 갈 곳을 찾지 않고 있던 전남편과 크게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매 여행 여행을 다른 사람들이 입을 모아 가봐야 한다는 곳과 해봐야 한다는 일로 빽빽이 채우고 나면, 마음에 의기양양함 같은 게 가득 차올랐다. 그런 작은 성공을 가슴에 지니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신기하게도 어쩐지 그간 주도권을 놓쳐버린 듯했던 나의 인생도 다시 동력을 돌릴 마음이 들곤 했다. 이렇듯 내게 여행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즐겁게 잘 살고 싶다!'는 내면의 엄청난 열망을 나름대로 세상에 크게 외치고 돌아오는 분출구인 셈이었다.
무엇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리셋을 누르고 가장 쉬운 스테이지 1부터 다시 플레이하는듯한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새로운 작은 왕국에서 게임 몇 판을 깨고 나면 원래 내가 일하던 일터도, 집도, 사람들도 다시 올 컬러로 되돌아와있곤 했다.
여행에서 비롯된 이런 성취감이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조차 내 컨트롤 아래에 있으리라는 자만으로 이어졌던 걸까? 정확히 알지 못하는 희망으로, 마치 여행을 떠나는 심정으로 나는 겁 없이 결혼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지 어언 2년이 다 되어간다. 나는 다시 여권을 들고 인천 공항 출국 심사대에 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꼼꼼히 계획을 세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실은 지난봄에 영주를 따라 잠시 제주도를 갔을 때, 그렇게 해 보았었다. 나쁘지 않았다.
쓸모 있는 여행으로 만드리라는 욕심보다
흘러가는 우연으로 가득 찬 여행이라도 괜찮을까?
내가 나의 엄마, 아빠만큼 부족한 부모가 되어버린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지금,
이제야 인생은 가끔 알 수 없는 쓰라림을 주기도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떠올린다.
새로 할 그 여행에서
순간순간 만날 그 누군가를, 그 어떤 풍경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었으면.
그리고 여행하는 동안, 예전의 나처럼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그래도 괜찮은 여행이 된다면, 어쩌면 지금의 내 인생도 실은 그래도 괜찮은 게 아닐까 하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