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고 살사를 춰봐요, 안디

쿠바 아바나 (October 2013)

by safari njema

가보고 싶었던 쿠바의 몇몇 도시를 돌아보고 결국은 다시 아바나(Habana)로 돌아왔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수도라는 장소는 나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대부분 수도는 그 나라에서 가장 발전되고 잘 사는 곳으로, 각 나라의 고유한 특성이 살아있기보다는 우리네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말 그대로 ‘도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여행에서 종종 수도는 입출국을 위하여 최소한으로 머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대신 그들만의 향기와 문화가 진하게 배어있는 작은 마을을 찾아다니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항상 예외는 있다. 쿠바의 아바나가 그렇다. 사회주의로 인하여 아직 어느 정도 폐쇄되어 있는 나라의 특성상 쿠바의 본모습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도 같지만 특히 아바나는 쿠바를 진하게 농축시켜 놓은 것 같았다. 다른 어느 곳을 가도 아바나만큼 ‘쿠바다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쿠바 음악의 고향 산티아고데쿠바(Santiago de Cuba),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아기자기한 트리니다드(Trinidad), 체 게바라가 숨 쉬고 있는 산타끌라라(Santa Clara) 등 각자 도시마다 아름다움과 특색이 살아있긴 하지만 정확히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아바나의 매력에는 견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남은 시간 일주일. 쿠바 여행의 시작이 그러하였듯이, 마지막 역시 아바나 거리를 슬렁슬렁 거닐며 남은 쿠바의 기운을 실컷 담기로 했다.


쿠바 여행의 절반은 밤에 이루어진다. 오전에는 문 여는 곳도 드물고, 한낮에는 너무 더워서 바깥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으름을 피우며 하루를 시작해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시원한 미술관에서 꽤나 매력적인 쿠바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다가 오후에는 까사(Casa)에 들어와 쉬어준다. 그리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슬금슬금 거리로 나가 골목마다 활기로 가득 찬 쿠바 사람들과 부대끼거나 클럽이나 바에 가서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것이 쿠바에서의 일상이었다. 원래 노래하고 춤추는 등 밤에 이루어지는 유흥문화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도 쿠바에서는 밤에 까사에 가만히 있으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 몸이 들썩들썩한달까.

아바나로 다시 돌아온 날 저녁, 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가는 까사에서 만난 한 친구를 위하여 어김없이 다 같이 살사클럽에 가게 되었다. 야외에 있는 이 살사클럽은 거의 우리의 나이트클럽 분위기다. 한껏 흥이 난 쿠바 사람들은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같이 갔던 한국 친구들 중에도 한국에서 이미 살사를 배웠던 친구들이 있어서 그들 역시 사람들과 한데 섞여 열정의 밤을 보냈다. 그 순간에 나는 또 고민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산티아고데쿠바에서처럼 내 손을 잡아끌어줄 까를로스Carlos나 알렉세이Alexei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결국 주저주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살사클럽에서 현란하고 뜨거웠던 그들의 몸 사위를 보고 난 후 까사로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르게 상쾌한 새벽에 쿠션 좋은 올드카 택시에 앉아 음악을 크게 틀고 말레꼰(Malecon)을 달리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도 멋지게 춤추고 싶다. 더 늦기 전에!’

이 기분이 바로 쿠바고, 아바나다. 무엇을 해야 할 이유도,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는 곳. 이미 나는 아바나라는 블랙홀에 빠졌다. 매일같이 들르던 아이스 초콜릿 가게는 음료를 만들 물이 없어 갑자기 임시 휴업이고, 식당에 가도 메뉴판에 있는 수많은 음식 중 요리가 가능한 것은 손에 꼽는다. 여러 갈래의 선택 앞에서 미리 고민하지 않는 것, 그것이 쿠바에서 여행자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이다. 그때의 나에게는 살사를 추는 것과 살사를 추지 않는 것, 두 가지의 길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민하지 않고 살사를 추는 것을 선택했다.


묵고 있는 까사의 주인아주머니께 부탁해서 살사 선생님을 구했다. 이곳에서는 직업이 따로 있어도 종종 개인적으로 살사 강습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선생님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날 저녁, 일을 마치고 온 살사 선생님인 안디Andy와 그의 친구인 라파엘Raphael의 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살사 분투기는 시작되었고, 매일 2~3시간씩 집중 강습이 진행되었다.

“그냥 나에게 맡기면 돼. 살사는 남자가 리드를 하기 때문에 내 손을 잡고 내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 거야. 준비됐지?”

“응!”

호기롭게 시작은 했지만, 몸치가 괜히 몸치일까. 게다가 라틴댄스의 특성상, 허리를 휘어질 듯 꼿꼿이 펴고 가슴과 엉덩이를 끊임없이 좌우로 움직여 줘야 제대로 된 스텝을 유지할 수 있었다. 평소 써본 적 없는 근육들을 움직여서인지, 수업할 때만큼은 혹독한 선생님인 안디Andy가 쉴 시간도 주지 않고 강행군을 해서인지, 흥겨워 보이기만 하던 살사를 제대로 춰 본 첫날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래도 날이 갈수록 춤을 춘다는 것은, 몸으로 음악을 느낀다는 것은 나에게 충분히 즐거운 경험이었으므로 쿠바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을 꼬박 안디Andy와의 살사 삼매경에 빠져 보내게 되었다.

수업을 한 지 삼 일째 되던 날 밤, 안디Andy는 한 살사클럽에서 초대받아 무대에서 춤을 춘다고 했다. 흔하지 않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까사에 묵고 있던 다른 친구와 함께 그 살사클럽으로 향했다. 무대 위의 춤추는 안디Andy는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치고 즐거워 보였다.

‘저것이 쿠바 사람들의 진짜 살사로구나.’

그 이후 살사에 대한 내 의지는 더 불타 올랐고, 안디Andy는 이런 나를 격려하며 살사에 대한 내 목마름을 가시게 해 주었다. 나는 흘린 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기에 우리는 매일 흘린 땀 속에서 살사와 함께 가까워졌고, 수업이 끝나면 살사를 비롯하여 서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밤거리를 걸어 다니곤 했다.


때로는 살사 수업이 끝나고 나면 안디Andy와 함께 라파엘Raphael의 엄마네 집에 들르곤 했는데 그 집은 당시 내부공사 중이었다. 페인트칠도 다시 하고, 타일도 다시 깔고, 가구도 새로 바꿔서 보다 아늑한 까사로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일꾼은 라파엘Raphael과 그의 친구들이 전부였다. 내가 건축을 공부했고, 건설현장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안디Andy가 공사에 대하여 도움을 받기 위해 종종 나를 데리고 갔었던 것이다. 나 역시 기꺼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함께 했다.

“애니, 살사는 많이 배웠어?”

“Puedo hacer mejor en el año próximo.(푸에도 아세르 메호르 엔 엘 아뇨 프록시모.)” [내년에나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럴 땐 próximo año (프록시모 아뇨)라고 하는 거야.”

공사 일을 함께 하는 동안에는 나는 그들에게 타일을 붙이고 페인트칠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그들은 나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었다. 언제 어느 때고 음악과 춤이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쿠바노 답게 일을 하는 동안에도 집안에는 항상 살사음악이 울려 퍼졌다. 덕분에 우리는 페인트칠을 하다가도 살사를 췄고, 잠깐 쉬는 시간에 커피를 마시다가도 살사를 췄다. 참으로 정겹고 행복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삶을 즐기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슬며시 그 안에 녹아들고 싶었다.

왜 살사를 이제야 배웠을까? 한국에서, 아니 처음 아바나에 도착했을 때라도 미리 배웠더라면 내 쿠바 여행은 더 신나 졌을 것이다. 알렉세이Alexei와 신나게 춤을 추며 산티아고데쿠바의 거리를 활보했을 것이고, 축제기간이었던 뜨리니다드에서는 밤새 동네 사람들과 그럴듯한 춤을 추며 열정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살사 수업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피할 수 없이 마지막 수업의 날은 돌아왔고, 아쉬운 만큼이나 더 많은 땀을 쏟아가며 살사를 향한 내 첫 번째 발걸음은 마무리가 되었다. 살사라고는 춰 본 적 없던 막대기 같은 내 몸이 일주일 만에 제법 실룩거리게 되었으니 그래도 꽤나 만족스럽지 않은가. 마지막 수업의 특별 이벤트로 이제까지 배운 것을 토대로 집에 있던 라파엘Raphel과 그의 동생 다니엘Daniel의 번갈아 손을 잡고 우리들만의 살사 공연을 했다. 그런데 내 몸놀림에 만족스러웠던 마음도 잠시, 늘 함께 춤을 추던 안디Andy가 아닌 다른 사람과 춤을 추니 영 제대로 움직여지지가 않는 것이다.

“나 한국에 돌아가면 꼭 살사 열심히 배울게. 그래서 다시 너를 찾아오면 그땐 같이 멋지게 한 번 춰 줄 거지?”

“당연하지. 열심히 연습하면 금방 잘 출 수 있게 될 거야.”

그렇게 일주일 간의 수업은 끝이 났고, 작별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전 날 준비해 둔 안디Andy의 초상화를 선물로 주었다. 무수히 많이 스쳐가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날 기억하게 해주고 싶었다.

“고마워. 내 얼굴을 그려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고맙긴. 너의 성실한 수업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어.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야.”

“이건 내가 준비한 거야. 돌아가서도 살사 연습 열심히 하라고 스텝이랑 동작들 동영상으로 찍어둔 거야.”

“정말? 너무 고마워. 이거 보면서 열심히 연습해야겠네! 우리 선생님 진짜 똑 부러진다니까.”

“이렇게 살사를 가르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너는 오래 기억이 날 것 같아.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고, 살사 말고도 페인트칠도 같이 하고 말이지.”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나도 널 오래 기억할게. 그리고 네가 꾸는 꿈도 꼭 이뤄지길 내가 기도할게.”

며칠 전 함께 걸으며, 서로의 꿈에 대하여 대화를 나눈 밤이 있었다.

“안디Andy 너는 굉장히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내가 만난 쿠바 사람들은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불안정해서인지 열심히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은데, 너는 엔지니어 일도 열심히 하고, 저녁에는 살사 강습도 하고.”

“사실 두 가지 일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아. 그렇지만 나는 춤추는 게 정말 좋아. 아직은 춤출 공간도 없어서 라파엘Raphael의 집을 빌리고 있지만 부지런히 돈을 모아서 나만의 살사 강습소를 차리는 게 내 꿈이야. 나는 평생 춤추며 살고 싶어.”

그렇게 말하는 안디Andy의 눈에서는 빛이 났다. 그날 이후로 나는 계속 춤을 사랑하고, 그 춤을 계속 추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안디Andy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살아내고 있는 안디Andy라면 머지않아 이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단편적으로 보기에 쿠바의 현실은 답답하고 척박한 것 같지만, 그 안에서 쿠바노들은 노래하고 춤을 춘다. 오히려 고단한 환경이 풍부한 예술적 감성을 지니는 데 밑거름이 되었을까.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쿠바노들은 행복해서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삶이 힘들어도 그저 춤을 추는 것일 뿐이라고. 어쩌면 그 힘이 지금 그들을 살게 하는 것일까?

여행 중에 읽었던 달라이 라마와 하워드 커틀러의 토론집인 <당신은 행복한가>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다.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면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삶의 우선 사항에 대해 생각하며, 모든 날들을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난 쿠바에서 춤을 추는 쿠바노들을 보면서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하루하루를 최대한으로 사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안디Andy의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아주 행복했다. 다른 이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처한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시간, 쿠바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너무 많은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그래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는지 말할 수가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말에 형체가 있다면 쿠바 사람들같이, 혹은 무대 위에서 춤을 추던 안디Andy의 모습같이 생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할 만큼 삶과 존재의 이유를 제대로 알고 실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인생의 갈림길에 서서 선뜻 어느 한 쪽의 선택을 망설이고 있었던 내가 그 때 그 곳에 다녀온 것이, 그리고 안디Andy를 만나 살사를 추면서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된 것이 결코 삶에서 우연히 벌어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분명 그 때 내가 그 곳에 존재하게 되고, 존재 자체를 함께 해준 사람들과 만나게 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소중히 하며 그것에 따라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체 게바라의 남미여행 기록을 영화로 만든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2004>의 마지막에 여행을 마친 체 게바라의 독백이 나온다.


Yo ya no soy yo. Por lo menos, no soy el mismo yo interior.
(나는 이미 이전의 내가 아니다. 최소한 내 내면은 예전의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한 마디로 잘 표현할 수가 있을까. 단지 똑 같은 하루라는 시간을 살았을 뿐이지만, 난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다. 여행이,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모든 것의 힘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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