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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방울 Aug 13. 2020

악기를 배우다

해금

왜 해금이었을까


한 10년 전쯤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아마도 TV나 라디오였겠지), 해금 연주를 듣고는 문득 이 악기가 궁금해졌다. 그때 들은 해금 소리는 슬픔이 가득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참아내는 듯한 음색을 갖고 있었다. 아마도 내 속에서 참고 있던 슬픔이나 외로움이 해금 소리에 움직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아주 우연히 집 근처 정보도서관에서 무료 해금 강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여러 개의 강좌 중 유독 해금 강좌가 내 눈에 들어온 건 우연이 아닐거다.


강좌에 마련된 해금을 하나씩 빌려 들고, 두 가닥 줄을 활로 그어 서툴지만 도레미파~ 오선보의 음을 배운다.

피아노나 리코더처럼 정해진 자리의 건반이나 구멍을 닫아서 내는 소리가 아닌 이건 순전히 내 감으로 눌러서 그 음을 찾아야만 했다. 게다가 명주 줄과 수십 가닥의 말총 활의 텐션이 서로 일치해야 그나마 음이라고 불릴 만한 소리가 난다. 


개인 해금을 구매해서 회사 근처 국악학원 교습까지 받았지만, 언젠가 들었던 그 깊은 음색을 낼 수 없던 나는 일 년도 안되어 해금 배우기를 포기했다. 집에서 연습하려고 할 때마다 가족들의 시끄럽다는 성화도 한 몫했다.



나만의 노을집 공간이 생기면서, 집 한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해금을 꺼냈다. 노을집에서는 시끄럽다고 성화를 들을 필요가 없으니 다시 해금 연습을 해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소문하여 교습을 해주실 선생님을 찾고, 국악기사에 해금을 맡겨 오래 묵어 뚝뚝 끊어진 말총 활을 갈았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다시 처음 그 해금 연주를 들었을 때의 설렘이 살아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설렌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그 두 가닥에서 나오는 신비한 소리를 다시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다.


조소작가이자 춘천 대안학교 다인학교 진명샘이 해금 거치대를 멋지게 만들어 주셨다.

해금을 다시 배우기 시작한 지 8개월째, 아직 나의 해금소리는 소위 깽깽이 소리가 90프로다. 그래도 노을집에서는 그 삑사리가 시끄럽다고 시비 거는 사람이 없다. 노을빛 퍼지는 창가에 앉아서 해금 연습을 하노라면, 손가락 하나하나 누르는 힘과 활을 당기는 힘 사이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 조차 신비롭다.


많이 서투른 탓도 있지만, 그 날의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해금 소리는 여전히 묘한 신비감을 더한다. 줄 사이에 숨겨진 수많은 음들 중 연주에 필요한 음을 찾아내는 것도 해금이 가진 매력 중 하나이다. 물론, 이 과정은 너무나 지루하고 힘들고 때론 화가 나기도 한다.


조용한 노을집에서 혼자 해금 연습을 하다 보면, 오선보로 그려내기도 힘든 이 음들 속에 우리만의 정서를 담아 연주해 온 오랜 옛사람들과 나를 연결하는 작은 끈이 얇지만 단단하게 이어져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자! 현실은 그저 소리라도 제대로 나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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