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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여행

큰추억

by 안전모드

딸 2가 태어나고 아장아장 걸을 무렵,
나는 거의 매주 주말마다 가족들을 데리고 산과 바다, 그리고 작은 관광지로 여행을 떠났다.

아이들이 크면 함께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나 역시 그 말을 사실처럼 받아들였다.
내가 어릴 적에도 부모님과의 여행은 짧았고, 어느새 친구들과의 시간이 많아졌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자고.

돗자리와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가득 채우고, 조개체험 도구를 챙기고, 놀이동산으로 향하며

우리 가족은 하나씩 소중한 추억을 쌓아갔다.

그 시간들을 동영상으로 찍고 사진으로 남겼다.
CD로 굽고, 컴퓨터 폴더에 월별로 정리하며 소중히 보관했다.
가끔 아이들과 함께 그 영상을 보면, 딸들은 자기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며 까르르 웃고 떠들곤 했다.
그 웃음소리만으로도 내 마음은 가득 찼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 아이들은 점점 친구들과의 시간이 많아졌다.
아빠의 손을 잡던 아이들은 이제 각자의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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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이 나와 닮은 딸 1과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배낭 하나씩 메고 국내 백패킹과 주제가 있는 여행을 떠나곤 했다
동남아 바이크 투어에도 함께 나서며 세상 구석구석을 탐험했다.

하지만 딸 2는 달랐다.
활동적인 여행보다는 조용히 머물며 쉬는 ‘호캉스’를 더 좋아했다.
그럼에도 나는 딸 2의 성향을 존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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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려 한다면 언제든 기다려주기로.

시간이 흘러 딸 1은 스스로 해외 청소년 캠프를 찾아 신청하고 여러 나라를 다니며 외국 친구들과 교류했다.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즐기고,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기도 했다.

딸 2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하면서 가족보다 친구들과의 시간이 많아졌다.
주말마다 연습과 시합이 이어지면서 함께 여행 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도 나는 두 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우고 성장하고 있으니까.

어느 시점부터 나는 생각했다.
인생은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구나.

새로운 곳에 발을 디딜 때면 항상 가슴이 설렌다.
탐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어딘가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가는 듯한 기대가 피어난다.

정글탐험, 해저탐험, 역사탐험…
어떤 탐험이든 그 속엔 희망과 도전, 그리고 가슴 뛰는 열정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을 잘 모른 채 살아왔다.
회사와 집을 오가며, 그저 ‘이런 게 삶이겠지’ 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다 상처를 겪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비로소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의 장점, 좋은 습관, 나는 언제 행복한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그 질문들에 천천히 답해가며
나는 ‘나’를 새로 알아가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여행은 결국,

나를 다시 부팅시키는 시간이었다.
컴퓨터를 껐다가 켜듯,
삶을 초기화하고 다시 출발하게 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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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나는 가족을 위해 헌신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버팀목이 되어준 건 가족이었다.


한쪽 문이 닫히면 언젠가 다른 문이 열린다.
나는 지금, 그 문을 찾아가는 여정에 서 있다.

언젠가 그 문을 활짝 열고
‘나다움’을 온전히 펼칠 그날을
조용히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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