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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만 끓이던 내가

밥상을 차리기까지

by 안전모드

결혼 이후 나는 평범한 남자들처럼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취 시절에도 일주일 내내 라면으로 버티던 시절이 있었을 정도로, ‘요리’란 내게 낯설고 귀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혼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중초등 두 딸을 둔 아빠로서, 매일 아침저녁 밥상을 책임져야 했다.

처음엔 부족한 실력을 발휘하며 열심히 만들어 보았지만, 시간은 오래 걸리고 맛은 없었다.

아이들은 정직했다.

어른들처럼 ‘정성껏 했으니 조금이라도 먹자’는 마음보다는, 맛이 없으면 한두 숟가락만 뜨고 말았다.

그릇에 남겨진 음식들을 치우며, 마음 한켠이 쿡쿡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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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때부터 요리를 제대로 배워보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의 레시피를 찾아 1인분씩 계량해가며, 실패와 성공을 반복했다.

요리는 반복의 예술이었다.

조금씩 손에 익고, 맛이 달라지고, 아이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아빠, 이거 맛있어.”

그 한마디에 세상이 다 환해졌다.

비록 메뉴는 몇 가지 한정적이었지만, 이제는 어떤 요리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엔 냉동식품으로 버티던 날들이 많았다.

그러다 문득,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이들에게는 건강한 집밥을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도전했고,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조금씩 나아졌다.

요리를 배우는 일 역시, 내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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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기쁜 일은 함께 나누려 하지만, 힘든 일에는 조용해진다.

그래서 이혼한 인생은 어쩐지 더 고독한것 같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

기뻐하라,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비통해하라, 그들이 너를 떠날 것이다.

축제를 열라, 그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치리라.

굶주리라, 세상이 너를 외면할 것이다.

— 엘라 휄콕스, 〈고독〉 중에서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깊이 울린다.

그래서 하소연하지 않는다.

조언을 구하기보다는, 내 마음을 단단히 세우고 스스로 길을 찾는다.

운동으로 몸을 다지고, 책으로 마음을 채우며, 글을 쓰며 나 자신을 돌아본다.

글을 쓰는일도 나를 돌아보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니까.


명절연휴 새아침이다

이번 추석명절은 나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지난주 선상 낚시로 잡아온 쭈꾸미와 한가위 음식들로 또 솜씨를 발휘해볼 생각이다.


아빠의 밥상 위엔 소박하지만 따뜻한 음식이 놓여 있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우리 셋이 함께 있다.


건강하게 살자.

나야,

그리고 나의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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