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뒤의 모습

by 이응지읒

나는 싫은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


예의상이라도 좋은 척, 괜찮은 척하기 힘든 사람인 것이다.


이런 성향은 또래끼리 지내던 초중고생 때까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대학에 들어오자 상황이 좀 바뀌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연극동아리에 들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바라던 일이었다. 그곳은 1976년도부터 이어진, 나름 전통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부 규율이 강했다.


언니, 오빠라는 호칭은 쓸 수 없었고 ‘선배’에 ‘님’ 자를 붙여 불러야 했다. 존댓말은 기본이고 동아리 방에 들어갈 때면 문을 열자마자 90도로 허리를 숙여,


안녕하십니까,
OO학과 02학번 XXX입니다.

라고 큰 소리로 관등성명(?)을 밝혀야 했다.


식당이나 술집에 가면 선배님들의 수저와 물 컵을 먼저 챙기라는 교육을 받았고, 선배님의 술잔이 비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하며, 1학년들끼리 모여 있으면 혼이 났다. 선배님들 사이사이 끼어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군대로 치면 이등병 같은 생활-안 가봤지만 들었던 것에 기준하여-을 1년간 해야만 정식 회원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동아리에 좋은 점도 있었다. 빈손으로 학교를 가도 걱정 없었다.


전공 서적은 동방 책장에 꽂아두면 되고, 배고프면 동방에 있는 선배에게나 '식사하셨어요?'라고 물으면 본인은 이미 밥을 먹었더라도 밥을 사줬다.


술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선배에게 차비까지 달라고 해 집에 온 적도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볼 땐 아주 파렴치한 행동이지만, 그때 그 시절, 2002년 '오 필승 코리아' 때는 그랬다.


그날도 동방에서 동기들과 함께 3교시 수업을 마치고 동방에 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날 걸린 사람은 97학번 4학년 남자 선배였다.


제비 새끼처럼 배고프다고 짹짹대는 우리를 데리고 선내는 가까운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2,500원짜리 메뉴 2개 중 하나를 시켰다.


식판에 밥을 받고 긴 테이블에 차례로 앉아 '잘 먹겠습니다'하고, 수저를 들었는데 웬걸. 기대보다 맛이 없었다.


2,500원짜리는 특식이었다. 저렴한 백반이 아니라 메인 반찬이 있는 비싼 메뉴였는데, 그런 거 치고는 매우 맛이 없었다.


그래서 무심코,


아, 맛없어.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맛이 없기에 맛없다고 한 거였는데 맞은편 선배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야, 아무리 맛이 없어도 선배가 사준 건데
바로 앞에서 그렇게 말하냐?

평소 유한 성격으로 철부지 1학년인 우리들을 나름 이해하고 챙겨주던 선배였다.


선배는 화가 난 거였을까, 서운했던 거였을까.


나는 그의 상태를 살피기보다는 오해를 풀기에 급급했다.


‘그게 아니고요, 선배님이 사주신 것에 대해선 감사하고 좋지만요, 정말 밥이 맛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선배님한테 말한 게 아니었어요.’


선배는 앞으로 다시는 내게 밥을 사주지 않겠다며 뼈 있는 농담을 했고,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이 일화를 끄집어냈다.


이후로도 이와 비슷한 류의 행동으로 종종 핀잔을 듣곤 했다.


기분 나쁘면 입술이 삐죽 나오고 표정이 굳어져 ‘주둥이 들이밀어라’라는 소리를 들었고,

‘싸가지가 없다’, ‘동아리 나오지 마라’ 등 동네북처럼 여러 남자 선배들에게 갈굼을 당했다.


여자 선배들은 나 때도 그랬다, 남자 선배들이 기강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마라, 그렇게 말해도 안 나갈 거 같으니까, 애정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다, 라며 내 편을 들어줬다. 하지만 당시 동아리 회장이었던 한 학년 위 여자 선배가 나에게 '모난 돌은 정 맞는다'라는 말도 했으니, 남녀 시각 차이라고 치부할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연극이 좋았기에 그 안의 룰을 최대한 따르며 버텼다. 그렇지만 쓴소리를 하는 선배들에 대한 서운함은 털어내지 못했고, 술만 들어가면 선배들을 붙잡고 ‘선배님, 왜 저를 싫어하세요?’라며 눈물을 뚝뚝 떨구곤 했다.


선배들은 질질 짜지 말라며 혼을 내거나 나름의 위로를 해서 나를 더 울리곤 했다.


나는 그런 찌질한 스무 살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거짓을 싫어하기에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걸 추구하는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되짚어보면, 나는 절대 솔직한 사람은 아니었다.


진심을 숨기면 숨겼지 당당히 드러내 놓는 용감함은 없었다.


나는 그저 서툰 사람이었다.

좋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 싫다는 것을 말하는 것에.


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다는 고백을 해본 적이 없다.


중학생 때 짝사랑하던 애들이 있었는데 언제나 무기명으로, 친구를 시켜, 편지나 선물을 전달하곤 했다. 고등학교 때도 호감 있는 애에게 좋다는 표현은 고사하고, 괜히 더 삐딱하게 굴고 틱틱거렸다.


20대까지는 남자 쪽에서 먼저 고백해야 사귀었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거절도 못해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운 좋게 나도 호감이 있던 남자와 사귀게 되면, 상대보다 더 많이 좋아하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했다.


이렇게 저렇게 몇 번 쓴 맛을 보고, 30대가 된 후에야 비로소 먼저 좋다는 표현을 할 용기를 냈다.


자기 방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갈빵처럼 위장한 내 진짜 모습이 들키지 않게 신경을 곤두 세우고 경계했다. 거절과 거부가 두려웠기에 내 진심을 숨겼다. 나를 지키는 게 가장 중요했기에 다른 사람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동아리 선배들이 내게 원했던 건 ‘예의’가 아니라 부족한 나 자신을 ‘인정’하는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잘못을 지적하는 말에 일일이 반박하며 스스로를 변호하려고 드는 나약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 입장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강인함을 가르쳐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싫어도 좋은 척하는 걸 요구한 게 아니라, 아닌 척하는 스무 살 어린애를 일깨워주기 위한 질타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렸다.

어린 생각도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할 만큼 어렸다. 하지만 이제는 어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글을 쓴다.


어린 나를 되돌아보고 지금의 나를 바로 잡도록 '나'에 대한 솔직한 글을 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