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 the Rainbow

- 무지개를 만나는 조건

by 이응지읒

나는 신혼여행을 아이슬란드로 갔다.


케이블 채널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2016년 1월보다 이전인 2014년 9월에 비행기를 2번이나 갈아타고 영국 위, 노르웨이 왼쪽, 그린란드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섬에 발을 디뎠다.


신혼여행은 사람들이 많이 안 가는 곳을 가고 싶었고, <세계여행 바이블>이라는 책을 뒤적거리던 중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설명에 꽂혔다.


또한 북유럽 도깨비 격인 ‘트롤’의 탄생지라고 하니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화의 배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와 화산뿐만 아니라 빙하도 볼 수 있다는 정보에 일타쌍피 같은 효율성마저 느껴졌다. 신혼여행은 아이슬란드가 아니고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사실 9월의 아이슬란드는 여행하기 약간 애매한 시기다.


날씨가 좋은 여름도 아니고 오로라를 매일 볼 수 있는 한 겨울도 아니다. 운이 좋으면 너무 춥지 않은 날씨에 오로라도 볼 수 있겠지만, 운이 나쁘면 부슬비가 내리는 우중충하고 스산한 날씨에 오로라도 못 보고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성수기보다 저렴한 가격이라는 생각에 행운을 기대하며 마음을 굳혔다.


당시에는 몇 개 없었던 블로그 여행기와 온라인 카페 정보로 6일간 차를 렌트하여 아이슬란드 전역을 한 바퀴 도는 여행 일정을 짰다.


일생에 단 한 번만 갈법한 곳이니 유명한 곳은 모두 보고 오겠다는 의욕에서였다. 다행히 도로가 단순해 1번 국도만 따라가면 되었고, 자동차의 내비게이션 옵션도 선택했으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믿었다.




싱벨리어 국립공원, 게이샤르 간헐천, 굴포스 폭포, 이 세 곳은 ‘The great golden circle’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가까운 유명 관광지다.


테트리스의 길쭉한 막대기 같은 암석이 차곡차곡 세로로 쌓인 협곡, 음악분수처럼 4~8분마다 15~20미터로 물을 뿜어대는 간헐천, 엄청난 물이 '쿠아아' 떨어져 주변으로 흩날리는 물방울이 비처럼 쏟아지는 폭포. 셋 다 우리나라 자연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연신 ‘우와~’라는 감탄사를 쏟으며 친구에게 빌린 디지털카메라와 셀카봉을 꽂은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명색이 신혼여행인데 스마트폰이 아닌 디지털 카메라로 전신 샷을 찍고 싶었지만, 부탁할 만한 마땅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관광객들은 거의 다 나이가 좀 있는 백인이었고, 심지어 일본인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검은 머리는 우리 둘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아쿠레이리'로 출발했다.


아쿠레이리는 섬 북부로 레이캬비크에서 388km 떨어진, 자동차로 약 5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다음 날 아쿠레이리에서 배를 타고 '그림세이'라는 섬에 갈 예정이었다. 북위 66도가 넘어 북극 지역에 속한 그림세이 섬은 북극에 왔다는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니까 저녁이 돼서야 도착하겠구나 생각하며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그런데 웬걸, 더 빠른 길이 나왔다.

'아싸, 땡잡았다!'

망설임 없이 그 길로 들어섰다.


길은 한적했다. 오고 가는 차도 없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 평화로워 동화책 속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집이나 건물 대신 울퉁불퉁한 바위산과 돌덩이를 덮은 짙은 초록색 이끼만 보였다. 인구가 우리나라 광명시 정도인 33만 명이고, 99%가 도시에 산다고 하니 인가가 없는 건 당연해 보였다.


출발한 지 1~2시간 정도 지나자 자동차 속력이 점점 줄어들며,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가 제자리걸음이었다. 반대로 도착 예정시간은 점점 늘어만 갔다.


길은 꼬불꼬불해졌고 도로는 흙길에 돌멩이가 굴러다녔다.


오프로드?!
이게 바로 그 오프로드?


겨울이 되어 눈이 쌓이면 다니지 못하는 길이 있는데, 다른 계절에도 그 길을 가려면 꼭 4륜 구동차, SUV로만 가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떠올랐다.


오전에 렌터카 업체에서 자동차 보험을 설명해줄 때 들었다. 이 자동차로는 그 길을 가면 안 된다. 그 길에서 사고가 나면 보험처리도 안 된다!


차를 돌려야 했다. 남편은 엑셀을 살살 밟으며 돌들을 피해 조심조심 핸들을 돌리는 운전에 집중력이 이미 떨어진 상태였고, 나는 이런 길을 곧 끝나겠지 하는 낙관적 편견에 기대어 최종 판단을 유보하고 있었다.


덜컹!

속력을 높인 차가 위로 크게 튀어 올랐다.


OMG.


올게 왔다.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가니 지나온 자리에 크고 뾰족한 돌덩이 하나가 있었고, 바닥에는 오색 빛을 내는 기름 줄이 자동차 가운데로 흐르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렌터카 업체에 전화를 했다.


위치를 설명해야 했지만 주변에 보이는 건 돌산뿐이었다. 짧은 영어로 F-road에서 사고가 났다고 하고 차의 상태를 설명하는데 반대편에서 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40대쯤으로 보이는 백인 아저씨가 무슨 일이냐 물었다.

'액시던트!'

(강세에 유의해 발음했다. 훗. -_-ㅋ)


그는 차에서 내려 휴대폰을 건네받아 차 상태를 살피며 렌터카 업체와 통화를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를 트럭에 태워 자신의 게스트하우스로 데려갔다.


아저씨는 근처에서 말 농장을 하며 게스트하우스 두 곳을 부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며, 신혼여행으로 왔는데 차를 빌려 여행한 첫날 이런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수리비용이 걱정됐다. 카트 한도가 벗어난 금액이 청구되는 게 아닌가 걱정됐다.


아저씨에게 혹시 렌터카 수리비용이 얼마 정도 나올 것 같나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는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권했다. 심지어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 정도란 말인가?


속으론 울었지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래도 허니문이잖아요. 그냥 갈수는 없죠. (ㅠ)’


하룻밤이 지나고, 우리는 새로운 렌터카를 받아 여행을 재개했다.




일반적인 신혼여행지가 아니고, 영어권 국가도 아닌 곳으로 떠났던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


비행기 연착과 수화물 분실 및 캐리어 파손, 자동차 수리비와 벌금과 견인비 청구, 일정이 밀려 추가 숙박비가 나오고 결국 그림세이 섬에는 못 감, 은반지 커플링 끼고 광물질 섞인 온천 들어갔다가 반지가 까맣게 변함, 경비행기 투어 갔다가 남편이 지갑을 흘려서 다시 갔다 옴, 오로라 투어 신청했지만 비 와서 결국 못 보고 환불도 못 받음.


혼수에서 아낀 돈을 본의 아니게 탕진하고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짜증이 날법한 상황이 많았지만 싸우지 않아 몸이나 마음, 어느 하나 다친 곳 없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말이다.


돈을 잃은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건강이나 사람을 잃는 것에 비해.




아이슬란드는 화산과 빙하가 있는, 불과 얼음의 땅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갔다 온 아이슬란드는 무지개가 지천에 있는 곳이었다.


아쉽게 오로라는 보지 못했지만 무지개는 정말 많이 봤다. 오프로드에서 트럭을 타고 아저씨의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와중에도 무지개를 봤는데 오색 빛이 아주 선명했다.


아이슬란드에서 무지개를 많이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물이 많기 때문이다. 뒤에 폭포가 있다 던지, 비가 잠시 내렸다 던지. 그리고 그다음에 햇빛이 환히 비췄기 때문에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무지개 저 너머에 있을 그 어떤 행복을 기대한다.


하지만 나는 무지개 전에는 항상 어려움이 있으며,
그것을 오롯이 지나 뒤에야 무지개가 생기는 거라고 믿는다.

항상 햇빛만 가득하다면 무지개를 볼 수 없다. 때론 고난이 있어야 삶의 역동성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비 온 뒤에만 보이는 저 무지개처럼 말이다.


IMG_1414.jpg 아이슬란드의 흔한 무지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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