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긴 여정의 첫발

by 이응지읒


7월에 세계여행가요.

첫마디는 우와 부럽다. 그리고 묻는다. 얼마나, 어느 곳, 누구랑 등.


‘남편과 함께 퇴사하고, 1년 정도 생각하고 있으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시작해 우선 아프리카까지 지구 반 바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면 표정이 바뀐다.


조금 더 커진 눈과 살짝 벌린 입을 보면 놀란 게 분명하다.


무모함에 혹은 용감함에.




요새 워낙 해외여행이 유행 같아졌고, 유학이나 어학연수 안 갔다 온 사람을 찾기 힘드니 세계여행이란 게 그다지 놀랄만한 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었는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닌가 보다. 매번 같은 레퍼토리가 일어나는 상황이 신기해 남편에게 물었다.


세계여행 간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
왜 다들 그렇게 놀라?

남편은 내가 생각지 못한 세계여행 제약조건을 이야기했다.


첫째, 빚이 없어야 한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은 세계여행은 고사하고 퇴사도 부담스럽다. 매달 고정적으로 목돈을 갚아야 하는 건 적지 않은 스트레스다.


둘째, 결혼하여 아이가 있는 사람들 또한 장기간 떠나기 쉽지 않다. 비용 마련 부담도 그렇고,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 및 교육도 걱정될 것이고, 아이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비용을 아끼기 힘들 것이다.


셋째, 의사소통에 자신감이 부족하면 힘들다. 바디랭귀지가 세계 공용어라고 하지만, 영어를 책으로 배웠던 현재 30대 중 해외에 나가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 언어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우리는 운 좋게 그 제약조건에 걸리는 게 없었다. 집은 전세지만 빚은 없고, 아이도 없고, 워킹홀리데이 경험으로 영어 두려움이 덜한 편이었다. 물론 이런 것보다 부부가 마음이 맞는 게 선행돼야겠지만.


결혼 전 남편에게 버킷리스트가 세계여행이라고 말했다. 만약 애가 안 생기면 세계여행이나 가자고 농담처럼 말했다. 말이 씨가 됐다.


둘 다 대기업 직원이 아니라 퇴사가 아쉽지 않았고, 이 업계는 항상 인력난이기에 돌아온 후 구직이 힘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만사태평한 우리 부부는 세계여행을 결심하고 1년 6개월 동안 여행경비로 7천만 원을 모았다. 이 속도라면 몇 년 안에 대출을 조금 얹어 집을 살 수도 있을 듯했지만 그 몇 년이라는 시간을 담보로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을 더 이상 견뎌내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여행은 무료함을 벗어나는
탈출구였다.

느슨해진 삶을 끝을 정해진 시간 위에 놓고 촘촘히 살고 싶었다. 14년 전 뉴질랜드에서 느꼈던 시간의 무게감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당시는 하루가 가는 게 무척이나 아까웠고, 한 시간의 의미가 너무나 소중했다.


학생 때는 매년 시험으로 학업성취도를 파악하고, 1년이 지나면 다음 학년이 되는 등 변화와 긴장감이 있었다. 회사는 이직을 하지 않는 실력 향상이나 성장 등을 파악하기 쉽지 않아 정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익숙한 게 잘하는 건 아니니까.


대학원 졸업 전 취직을 했다. 한 회사에서 9년간 사원부터 차장까지 올랐다. 이 일이 적성에 안 맞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는 ‘정말 싶은 일’은 아니었다.


회사는 학자금 대출 청산과 생활비를 벌기 위한 도구였다. 회사생활 초반에는 일도 하며 꿈도 펼치리란 꿈같은 생각을 했지만, 내가 가진 에너지와 시간으로는 둘 중 하나에 온통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나는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회사 일에 매진했고, 시간은 어느새 이만큼이나 흘러 있었다.


2017년 말, 회사에 세계여행 계획을 말할 때만 해도 1년 휴직을 생각했다. 회사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했다. 휴직이든, 퇴사든.


1년 동안 재고에 재고를 거듭해 내린 결론은 퇴사였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꿈을 접기엔 인생 끝이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다.


세계여행은 2020년 2월, 출발한 지 8개월 만에 끝났다. 그리고 여행 전 다짐했던 대로 내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다.


말만 거창하지, 사실 그냥 백수로 집에 박혀 취미생활을 하는 중이다.


고백하자면, 세계여행만 가면 저절로 크리에이터가 될 거라 생각했다. 상상력이 샘솟아 위대한 창작활동을 할 줄 알았다.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듣고, 다른 것을 느낄 테니까.


쯧쯧. 퍽이나...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다.

시간을 많이 쓰며 부단한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었다. 여행 자체가 경험치가 되어 자동 레벨 업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던 것이다.


칼질을 해야 한다. 생각을 정제하고 다져서 그럴듯하게 모양도 내야 한다. 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가! (하지만 재밌기도 하다.)


그래도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2019년 9월, 키르기스스탄 아라쿨 호수(Ala-Kul Lake)의 죽을 뻔한 트레킹을 통한 깨달음이다.


발걸음 떼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도착한다.

렌트한 등산스틱을 부여잡고 신이란 신에게는 모두 빌며, 추가적으로 이 등산스틱을 갖고 무사 귀환한 이전 사람들에게도 빌며 산을 올르고 또 내려왔다. 비록 아-주 오래 걸렸지만 결국 성공한 것이다.


잠시 쉬었다 갈 수는 있겠지만 갈 곳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면 결과가 나온다. 모든 시작이 그러하듯 처음은 미숙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믿고, 오늘도 '전진' & '정진'한다.


IMG_0070.JPG
365A7130_1.jpg
키르기스스탄 아라쿨 호수(Ala-Kul Lake)


키르기스스탄은 중국,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맞댄 중앙아시아 국가로 옛 소비에트 연방 중 하나였다. 저렴한 물가와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서구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매거진의 이전글Over the Rainb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