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서 있는 시간에 대하여
여행 중 들렀던 미술관에서
마음에 오래 남는 그림을 보게 되었다.
꾸밈도, 감춤도 없는
‘뒷모습’.
이상하리만치
그 모습은 나를 편안하게 했다.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쇼이.
그는 110년이 지난 후,
지금의 내게 붓으로 위로를 건넸다.
독일의 화가 에밀 놀데는
그를 팔레트로 시를 쓰는
서정 시인이라 칭송했다고 한다.
연필이 아닌
붓으로 시를 그려내는 그의 작품은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이 머물러 쉬게 한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
창가로 스며드는 빛,
뒤돌아 앉은 여인
혹자는 고독하고 우울하다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우울 속에서,
비로소 숨이 쉬어졌다.
수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뒷모습이야말로
가장 진짜에 가까운 얼굴이 아닐까.
뒤를 돌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꾸며낸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된다.
거울 없이는
스스로의 뒷모습을 볼 수 없기에
더욱 꾸며내기 어렵다.
뒷모습은 내게 침묵 같다.
그저, 있는 그대로인 상태.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확인이 되지 않는 뒷모습.
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_ 나태주, 뒷모습 중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계절에
내겐
뒤돌아 서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과 마주 서기보다
내면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조용한 쉼.
타인에게 보이는 내가 아니라
진짜 나는 어떤지,
내 마음은 괜찮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 속에서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세상의 속도에 맞춰 살다 보면
우리는 늘
세상의 뒷꽁무니를 쫓게 된다.
숨이 차도록 달려도
겨우 그림자에 닿을 뿐,
세상을 앞지른다는 건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차피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정해진 길이라는 것 또한
허상에 가깝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그래서 나는
세상을 좇는 일을 잠시 멈추려 한다.
앞서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뒤돌아 서 있는 시간.
무소의 뿔처럼,
혼자.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