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끝내 부치지 않을 편지

by 글쓰는 한큐

당신을 처음 만난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아마 평생 잊을 수 없겠지요.


하루하루 시들어가던 나를

빛나는 사람이라 불러주던

당신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맴돌아요.


닳아빠진 나 같은 게 뭐가 그리 좋다고

나를 향해 얼굴을 붉히던 당신.

참으로 오랜만에 나도 소녀가 된 것 같았습니다.

감히 내가 이런 기분을 느껴도 될까 싶었어요.


당신은 내 삶에서 가장 싱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젊음이 얼마나 눈부신 축복인지

당신을 보며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더욱 당신의 손을 잡지 못했어요.

당신에게는 늘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브람스를 좋아하냐는 물음마저

끝까지 꺼내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던 당신.


사실 난 알고 있었어요.

그 물음이

나를 향한 당신의 고백이라는 것을.

한 번만, 날 바라봐 달라는 뜻이었음을.


그날 밤, 방에 홀로 앉아 대답했어요.

“브람스를 좋아해요…”

당신에게 닿아서는 안 될 말이었기에

당신이 듣지 못하는 곳에서

초승달에게만 들리도록

읊조릴 수밖에 없었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이곳에 붙잡아 두는 일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나는 알고 있었거든요.

사랑은 마음만으로는

끝까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도요.

내가 로제에게 돌아간 것에

당신은 아직도 화가 많이 났나요?


설령 그렇다 해도

나는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나를 향한 당신의 마음이

서서히 식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보다는

당신을 잃고 아파하는 편이 나으니까요.

당신이 화를 내면

아직 내게 마음이 남아 있구나 싶어

안도하는 나를,

나도 부정할 수 없어요.


이렇게 비겁하고 추악한 마음을 가진 나를

당신은 사랑할 수 있나요?


나는 이제

영원한 사랑을 믿는 소녀가 아니에요.

사랑은 뜨겁게 타오르다

이내 식어버리죠.

모두가 그렇다 해도

당신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어요.

적어도,

그 순간을 내가 보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을 떠났습니다.


이런 나를 용서하지 말아요.

그러나 부디,

이런 나를 사랑해줘요.


이 말을 당신에게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도 이렇게

불필요한 미사여구만 늘어놓고 있네요.

겁쟁이인 나는

이 말이 그리도 어려웠어요.


시몽,

당신을 사랑해요.


오늘도 나는 불면의 밤을 보내겠지요.

당신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이 밤은

사랑하는 당신을 놓아버린

내게 주어진 벌이니까요.


당신에게만은

이 밤이 평온하길 바라며

이만, 편지를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