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잊은 그대에게
나는 클래식을 종종 듣는 편이지만
대개 곡명을 외우진 못한다.
형식을 기반으로 영문과 숫자로 길게 나열된 이름들은
언제나 낯설었다.
그런데 처음 듣자마자
한 장면이 또렷이 그려지는 곡이 있었다.
어둡고 고요한 방 안,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악보는 흐트러져 있고
커다란 창문은 활짝 열린 채
투명하리만치 희고 얇은 커튼이 바람에 나부낀다.
이 방을 밝히는 것은
오직 푸르게 부서진 달빛의 조각뿐.
그렇다.
클로드 드뷔시의 달빛 (Clair de Lune)이다.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은
눈앞에 고요한 풍경을 펼쳐 보이고
어지러운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힌다.
새벽의 장막을 걷고
새로운 하루를 여는 태양빛도 좋지만
나는 조용히 어둠 속에 스며들어
밤을 지키는 달빛이 더 좋다.
낮에는 햇빛에 가려 보이지도 않을 텐데
저물지 않고 하루 종일 떠 있는 달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때가 오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빛이 날 순간도 오겠지.
기댈 곳이 없는 밤마다
나는 달에게 내 이야기를 건넸다.
그는 나를 가엾이 여기지도,
질책하지도 않았다.
그저 먼 곳에서 가만히 들었다.
달은 나의 말과 눈물을 머금으며
조용히 차올라
만월의 따뜻한 빛으로
나를 위로했다.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에게서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I love you’를 어떻게 번역할지 묻는 학생에게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말해도 충분하다고 했다는 이야기.
마음을 전하는 일은 어렵다.
전할 수 있는 매개체는 늘어났지만
기술과 속도가 천문학적으로 발달할수록
정작 마음은 더 멀어졌다.
세상의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서로의 거리는 멀어진다.
좋아하는 소설 속 한 문장이 떠오른다.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모든 것이 전보다 좋아졌다고 믿고 싶지만
자꾸만 마음에 모래알갱이가 걸린 것처럼
어딘가 불편하다.
상처를 비난하고
영광을 폄훼하고
서로를 불신하며
선의를 의심하는 사이
마음들은 점점 퍼석하게 말라간다.
그 풍경이 서글프다.
눈물이 말라버린 사회에서
나는 눈물 젖은 문장을 쓰고 싶다.
나의 문장에 함께 울어주는 이들이 모여
눈물을 되찾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달이 예쁘다는 말에
사랑을 담을 수 있는 사회를
나는 꿈꾼다.
자고 일어나면
천지가 개벽한 듯한 세상이다.
어제의 정답은 오늘의 오답이 되고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생긴다.
그럴수록 나는
변치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유용한 것들은 끊임없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대개 무용한 것들이다.
식탁 위 화병에 담긴 꽃 한 송이,
소중한 이에게 받은 편지 한 장.
시간과 정성이 담긴
이 무용한 것들만이
세상에 뒤처져 무너지려 하던
나를 지켜왔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예술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