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순간

하루의 가장 느린 순간 #3

by 글쓰는 한큐

하루 중 가장 느리게 흘러가던 순간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순간을 떠올린다.


내가 사는 곳은 15층.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다니는 내겐

계단으로 오르내리기엔 꽤 높은 곳이다.


출근 시간의 엘리베이터 숫자는

유난히 더디게 바뀐다.

문이 열리자마자 올라타

닫힘 버튼을 몇 번이고 누른다.

중간중간 멈출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1층에 도착하면

도망치듯 뛰쳐나가 지하철로 향한다.

숨이 막히는 아침이다.


연차를 내고 카페에 가려 집을 나섰던 날,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문득 알아차렸다.

숫자판도, 시계도 보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서 있다는 걸.


그날의 엘리베이터는

평소보다 빨랐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마음이 조금 느려졌던 것일지도.


돌이켜보면

나는 늘 시간이 없다고 말해왔다.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은 이유도

그만둔 이유도

언제나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말 뒤에 숨어

한참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던 시절,

아무것도 품지 못한 나는

조용히 메말라갔다.


메말라버린 마음은

손대면 부서질 것 같았다.


나는 그 가루를 모아

연필을 만들고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무얼 쓰는지도 모른 채

그냥 적었다.


서툰 문장들이 쌓여

글이 되었고,

그 글이

조금씩 나를 적셨다.


오늘도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연필을 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