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을 조우하는 시간

완성은 채움이 아니라, 띄움이었다.

by 글쓰는 한큐

한 번도 쉬지 않고

숨 가쁘게 달려왔으므로

언제나 내 삶은 가득 차 있다고 여겼다.

무엇으로 차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분리수거장의 마대자루에 들어간

참치캔처럼 텅 비어 있진 않다고 생각했다.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은 순간에는

내 안에 가득 찬 것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시작했다.

내가 선보이는 것들이 꽤나 멋질 줄 알았다.

사람들이 내게 대단하다 박수쳐 줄 거라 믿었다.


오만한 착각이었다.


우습게도 문장을 한 줄씩 꺼낼수록

나는 내 바닥으로 한 층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그저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을.


이제껏 내가 살아온 것들은 무엇이었나.

허탈했다.

결실을 맺고 싶었던 순간 깨달은 것이

텅 비어 있었다는 사실이라니.

침대에 누워 있는 지금,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밑 빠진 독을 채우듯

닥치는 대로 삼키려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나의 텅 빈 속을 채우고 싶었다.

내가 빈 깡통이라는 것을

세상 누구도 알게 해선 안 됐다.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게 두려워

자꾸만 한밤중에 눈이 떠졌다.


공포가 나를 덮칠 때마다

신을 찾아 헤매는 신도처럼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뭐라도 쓰면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렇게 매일 한 문장을 목표로 글을 썼다.


내 밑천이 드러나지 않도록,

내 텅 빈 속을 아무도 모르도록

쓰고 또 썼다.


쓸수록 깨달았다.

내가 부족함을 알아야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내가 텅 비어 있어야 세상으로 채울 수 있음을.

교만했던 내게 글은 겸허함을 알려줬다.


비어 있음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