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새해

Unhappy New Year

by 글쓰는 한큐


푸른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에 어스름이 내려앉을 때, 그녀는 옷깃을 움켜쥐고 잰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몸이 자꾸 움츠러들어, 가뜩이나 뻐근한 목과 어깨가 끊어질 것만 같았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스트레칭 하기를 포스트잇에 써 붙여뒀지만, 모니터 속 숫자와 씨름하다 보면 늘 잊기 일쑤였다. 옆자리 동료가 그녀에게 곧 거북이랑 친구하자고 하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녀는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아침에 급히 나오느라 장갑을 챙기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그녀는 지하철역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서둘렀지만 야속하게도 지하철 문은 눈앞에서 닫혀버렸다. 잠시 미간을 찌푸린 그녀는 플랫폼 의자에 앉아 다음 열차 시간을 확인하려 휴대폰을 켰다. 다음 열차는 10분 뒤.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을 것 같아, 잠겨 있던 숨이 조금 풀렸다. 그제서야 엉덩이를 타고 올라오는 철제 의자의 냉기가 느껴졌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가 인스타그램 속 사진을 넘기는 얼굴은 퍼석하게 말라 있었다. 반짝이는 거리에서 환하게 웃으며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사람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 그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그녀만 빼고 온 세상이 새해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퇴근길 지하철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히터 바람이 텁텁했고, 무채색 외투를 입은 무채색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풍경이 그녀를 편하게 했다. 오색찬란한 휴대폰 속 화면과 달리, 현실의 색이 한 톤으로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추위가 가시고 적당히 답답한 공기 덕분에, 그녀는 살짝 졸린 상태로 지하철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하루 종일 업무메일의 마지막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붙였다. 지겨웠다. 새해라고 해서 정말 복을 받을 수 있기는 한 걸까, 유치한 의문이 들었다. 작년의 그녀와 올해의 그녀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새 사람이 된 것처럼 굴었다. 어색했고, 불편했다. 그녀는 작년의 문제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아 여전히 그때의 감정을 안고 있는데, 새해라는 놈은 준비도 기다림도 없이 제멋대로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일 년 동안 해묵은 감정들을 12월 31일까지 허겁지겁 해치우는 일이 그녀로선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다들 감정을 자르는 가위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감정들과 문제들을 품은 채 앓고 있는 자신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져, 그녀는 괜히 헛기침을 해본다.


“이번 역은 우리 열차의 마지막 역인…”


어느덧 종점에 다 왔다. 이제 끝이다. 그녀는 다시 외투 깃을 세우고 몸을 웅크린 채 지하철을 내렸다. 바깥은 여전히 춥고 어두웠다.

푸른 하늘은 이미 닫혔는데, 그녀의 마음만 아직 플랫폼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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