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더 이상
여행이 즐겁지 않을까? (2)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 다!

by 글쓰는 한큐

장장 17년을 믿고 살던 나의 오아시스가 한낱 허울뿐임을 깨달았을 때의 감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했다. 이걸 단순히 슬프다 혹은 속상하다 정도의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까?

이제껏 내가 살아온 삶의 방향을 모조리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럼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그 힘든 나날들을 견디며 달려온 걸까?

어디서부터 질문을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여행을 가려고 아껴둔 연차를 오롯이 생각의 시간을 위해 사용했다.

몇 날며칠 집과 카페에 틀어박혀 왜?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졌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우정을 다져온 우울과 불면이 나와 함께 고민해 줬다.

우리는 계속 나에게 질문했다.


지금의 넌 어떤 상태야?
넌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외에도 수많은 질문들 중 나는 먼저 한 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써 내려갔다.


나는 왜 더 이상 여행이 즐겁지 않을까?

분명 처음에는 여행이 즐거웠다. 공항에 가는 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현실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었다.

여행을 다녀오기 전이나 후나 변함없이,

어쩌면 업무와 사람에 더 치이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내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두 번째 이유는 ‘소진된 감정’이었다.

원래 나는 감정표현이 크진 않아도 사소한 것에도 기뻐하고 놀라는 사람이었다.

매일 통제범위 밖의 상황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며

일머리와 눈치까지 겸비해야 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건 아주 큰 약점이다.

살아남기 위해 나는 아주 정교하고 두꺼운 가면을 썼다.

때론 나조차도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잊을 만큼 가면과 일체화되어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모든 감정이 다 비슷해져 버렸다.


나와 동년배라면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준비물로 자주 가져갔던 고무찰흙을 기억할 것이다.

처음 샀을 땐 색별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고 남은 찰흙을 죄다 뭉쳐 공모양으로 만들면 탁하고 어두운 색이 된다.

색이 뒤섞여버린 공은 내 흥미를 떨어뜨리기 일쑤였고 곧장 쓰레기통 행이었다.

그 찰흙공이 내 감정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은 ‘여행을 할 줄 몰라서’였다.

여행을 그렇게나 좋아하고 많이 다녔는데, 정작 나는 여행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최저가 항공권을 찾아내고, 호텔후기를 뒤지고, 온갖 명소와 유명한 식당을 예약하는 데에는 도가 텄지만,

낯선 도시와 환경을 즐기는 법에 대해서는 무외한이었다.

구글맵을 켜지 않으면 목적지에 갈 수 없었고, 평점을 확인하지 않은 식당은 들어가기 꺼려했다.

카페는 다리가 아프거나 예약시간이 붕 뜰 때, 잠시 시간을 때우는 곳이었다.

나는 그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지구 반대편에 왔지만,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어디에도 마음이 머물지 못했고, 조급했으며,

여유를 부리거나 일정을 비워둔 채 누워있으면 죄책감이 들었다.

이 제한된 시간 내에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보고 느껴야 한다는 강박으로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어느새 여행도 내게는 해내야 할 과업이 되어버렸다.

(인천공항 출국장에 주저앉아 이게 출장 가는 것과 뭐가 다를까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여행이 즐겁지 않은 사람이 됐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때는 단단히 얽힌 실타래 같았는데, 막상 글로 써 내려가니 제법 명료했다.

그래서 나는 다음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할 용기가 생겼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