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더 이상
여행이 즐겁지 않을까? (3)

때론 정답을 찾지 않는 게 답일 때도 있다

by 글쓰는 한큐

이제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차례였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써 내려가기까지 약 2주의 시간이 걸렸다.


여행이 다시 즐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하는 것인지,

이 생을 살아가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하는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해 숱한 밤을 헤맸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억지로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고,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 속 숫자와 글자를 바라보고,

약국에서 파는 안약 중 가장 화한 안약을 뻑뻑한 눈에 넣는,

이 모든 순간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렀다.


나와 내가 끊임없이 싸웠다.


‘남들도 다 이러고 살아. 원래 이런 게 어른의 삶이야. 넌 너무 유난스러워. 매달 따박따박 월급 받으면서 성실하게 살고 있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평생을 순종적으로 살아와놓고 이제 와서 반항이라도 해보려고? 네가 그럴 깜냥이나 될까?’


‘이렇게 사는 건 아니야. 너는 계속 의문을 가져야 해. 생각하지 않고 살다 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돼. 아니, 그냥 생각 없이 무지성으로 숨만 쉬게 될걸? 과연 그런 것을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넌 정말 이런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거야? 이렇게 살려고 그렇게나 치열하게 너의 10대, 20대를 살아온 거니? 이대로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정년퇴직을 바라보는 나이가 될 때까지 계속 살아도 괜찮아?’


머릿속이 생각들로 가득 차 뜨끈해져 갈 때쯤, 독서노트를 들고 무작정 서점에 갔다.

누군가가 들으면 이상하다며 웃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머리가 복잡해지면 더 많은 활자를 읽으면서 골치 아픈 생각을 밀어내곤 한다.

나만의 텍스트 이이제이(以夷制夷) 법이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정말 우연히 펼친 독서노트의 한 페이지에 답이 있었다.

사실 그냥 써둔 메모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답이었기에

그렇게 믿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리고는 데미안을 다시 꺼내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 나는 평온한 상태에 도달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명료해졌다.

여행이 다시 즐거워지는 것, 생을 살아가는 것은 모두 같은 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나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고민은 죽는 그날까지 해야 한다.

물음표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늙는다는 것, 즉 죽음으로 향한다는 것.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는 게 나로 살아가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멋지고 그럴싸한 답을 인용해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


알을 깨고 나온 새로운 세계에서 나의 기준은 ‘내 마음이 반응하는가’이다.

치열하게 생각하고, 내 마음이 반응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이것이 삼십 대 초반의 내가 써본 투박하고 서투른 날 것 그대로의 답이다.


이렇게 살아보고 몇 년 뒤, 다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써보려 한다.

그때의 나는 뭐라고 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