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변화에도 변함없는 매력을 지니는 사람
이십 대의 나는 모란 같은 사람을 동경했다.
크고 화려하고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 주인공 같은 사람.
주목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걸 즐기지 않았음에도
나도 모르게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는 이에게 눈길이 가고 부러워했다.
모란이 되진 못해도 그 언저리에 다가가려 유행을 좇아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고, 좋아하지도 않는 짙은 화장을 했다.
나를 버리고 누군가의 아류로 살아가려 했다.
결과는 뻔했다.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뱁새가 가랑이 찢어지도록 황새를 따라간다고 황새가 될 수는 없었다.
그때 생각했다.
‘왜 모란이 되어야 하지?’
‘모란이 아니면 무의미한가?’
아니었다.
그 누구도 내게 모란이 돼라 한 적 없었고, 모란이 될 필요도 없었다.
모란이 유의미하다는 것 또한 확실치 않았고, 모란이 아니라고 무의미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비틀린 마음으로 바라본 세상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나는 내 마음이 비틀린 줄도 모르고 현실을 탓하고 구겨진 틈에 나를 욱여넣었다.
스스로 끼어놓고선 아프다고 펑펑 울어댔다.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이 눈물에 흠뻑 젖었다.
비록 구김은 남았지만 흐물흐물해진 덕분에 펼쳐졌다.
그제야 알았다.
그동안 내 마음이 이렇게나 구겨져 비틀려 있었다는 것을.
비록 화려하지 않지만 나만의 향을 품은 은방울꽃으로 살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골짜기 바위틈에 조용히 혼자 피어있어도 괜찮았다.
조용히 내 속도에 맞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면 되는 거였다.
세상은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변화한다.
몇 년 전까지는 이름마저 낯설던 AI를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다.
향후 몇 년 내로 대다수의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AGI가 등장해
이제껏 이뤄온 인류문명의 패러다임을 뒤엎을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체될 것을 두려워한다.
나는 이미 인공지능 전부터도 우린 우리 자신을 잃었다고 생각해 왔다.
비단 모란을 좇아 나를 버린 일화는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하는 것이 좋아 보이면 무작정 따라 하곤 한다.
이것이 내게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도 생각하지 않고.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왜?’라는 질문에 ‘그냥’이라는 모호한 말로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그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는 것임을 미처 몰랐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버리고, 생각을 포기한 채 살아왔기에
어쩌면 인공지능에게 대체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다면, 어떤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향기가 있는 꽃과 같은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에고가 아닌 진짜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만의 서사를 가진 화려하진 않아도 고유의 향을 지닌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쌓아 올린 사람은 쉽게 무너지거나 대체되지 않는다.
제아무리 인공지능이 그 사람과 똑같은 결과물을 냈다고 할지라도,
고유의 스토리가 없는 결과물은 허접한 아류작에 불과하다.
지금 당장 내가 캔버스에 그린 물방울은 그냥 물방울에 불과하다.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김창열 화백이 그린 물방울은?
수 십, 수 백억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가 그린 물방울에는 그의 인생,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나의 story를 쌓아 그 무엇에도 대체될 수 없는 나만의 history를 만들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