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 4학기 3주차 과제
어쭙잖은 개똥철학은 집어 치워야지. 컴퓨터 앞에서 늘 하는 생각이다. 그동안 글쓰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자판 앞에 앉은 지금도 그렇다. 언제나 자못 진지한 주제를 택했다. 깊은 사유 없이 시간에 쫓겼다. 부랴부랴 분량을 채우기에 바쁘다. 길이가 부담스러우니 한 줄이 아쉽다. 살려야 한다. 요즘 많이 보던 말이다. 그러니 급하게 결론으로 간다. 어떤 때는 뜬금포가 터지기도 한다. 글선생님의 칼부림이 시작된다. 우울하다.
그래 나도 사는 얘기를 쓰자. 나야말로 바쁜 사람 아닌가? 오지랖도 넓다. 그래서 여기저기 잘도 쏘다닌다. 아침 점심 저녁, 얼마나 사건이 많은가? 어라 바로 지난 주 한나님의 글이 그랬다. 형식 표절이네. 학생이 머 어떠냐. 그래도 김빠진다. 서평이나 쓰자. 책이 만만치 않다. 숙제 기한은 다가왔다. 반쯤 남았다. 200페이지동안 같은 말만 들은 듯하다. 서평도 쓰긴 틀렸다.
여기까지 쓰고 또 딴 짓이다. 술 담으려고 말리고 있는 매실과 유리병을 들여다본다. 덜 말랐다. 다시 들어왔다. 페이스북은 그만 보자 다짐했다. 어느새 손은 타임라인을 오르락내리락한다. 매실 보러 또 나간다. 이제 다 말랐다. 설탕을 가져왔다. 매실을 넣고 설탕을 켜켜이 넣는다. 사진도 한 장 찍는다. 어김없이 SNS에 올린다. 포스팅을 했으니 또 타임라인과 알림창을 왔다 갔다 한다. 업무 메일이 도착했다. 회신을 한다. 일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배가 고프다. 부엌으로 간다. 먹을 것이 없다. 매실주 한잔을 따른다. 3년 전에 담근 술이다. 잠자기 전에 한잔씩 마시면 건강에 좋단다. 건강은 모르겠다. 맛은 좋다.
딩동. 숙제 대장 이삭님이 어김없이 숙제를 제출한다. 쓱 본다. 글귀 모음까지 다 했다. 나는 언제 하지? 주눅이 든다. 여전히 광활한 A4 한매는 반쯤 남았다. 이제 글의 결론이 걱정이다. 주저리 쓴 글을 어떻게 맺어야 하나. 결론보다 남은 분량이 더 문제다. 이쯤 되면 글쓰기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생긴다. 과연 내가 쓰는 글이 나와 세상에 어떤 의미를 만드는가. 물론 대단한 결과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단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 생각의 실체를 손에 잡으려 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신감도 있었다. 근거는 없다. 그러나 현재 스코어 부끄럽다. 공부 한 것들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해야 할 것들은 많게만 느껴진다. 남은 10주가 아득하다.
결국은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일기처럼 쉽게 써야지. 짧은 글을 많이 모으고 싶다. 티끌 모아 태산이다.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손으로 생각하라 했다. 손끝에서 나오는 글을 쓰고 싶다. 쏟아서 잘 골라 보면 쓸 만한 것이 있겠다. 돌고 돌아 다시 처음이다. 그래도 처음보다야 조금이나마 낫겠지. 몇 바퀴 돌면 맘에 드는 날도 오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