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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ekly Sage Jun 19. 2016

글쓰기를 다시 생각하며

삼다

제가 2014년 9월부터 1년 동안 박총 선생님의 지도로 글쓰기 수업에 참여했었습니다. 작년 8월에 마지막 수업을 하고 50주 과정을 그럭저럭 많이 빠지지 않고 나름 성실하게 참여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처음에는 매주 두 편씩 글을 써서 숙제로 제출했는데 한 학기 후에는 한편씩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나마도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빼먹어서 지금 저장된 글이 그렇게 많지 않네요.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헤어지기 아쉬워 2주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다가 지금은 매주 하자하여 저도 꼭꼭 참석했었는데 최근 한 달은 일이 바빠 또 빠지기 시작했네요. 돌아오는 모임에는 꼭 참석하려고 합니다. 모임을 지키고 공부를 계속 이어가는 친구들이 정말 고맙습니다.

올해 2016년 목표가 매주 한편씩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일일 회고 글을 꽤 써 댔으니 개수로는 많이 따라왔습니다만 과연 한편의 분량과 질을 채웠냐고 스스로 질문해 보면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이제는 첨삭해 주시는 스승도 없으니 더 정진할 수밖에 없군요. 이번 주부터 주말에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한 챕터씩 읽고 예전 삼다의 커리큘럼에 맞춰 예전 글도 브런치에 공유하고 빼먹은 숙제는 다시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늘 그렇듯이 작심 삼주로 끝나면 또 쉬었다가 다시 하고 그렇게 꾸역꾸역 가보겠습니다. 

이번 주는 고종석의 문장 2의 첫 장 -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1학기 1주 차 에세이 "작문 공동체 삼다란 들판에서 내가 피우고 싶은 꽃"을 아래 공유합니다

당시에는 미디엄에 글을 공유했었습니다. (https://medium.com/know-true-myself/%EC%82%BC%EB%8B%A4-3c47a62a2e85#.s285oijim) 이리로 하나 씩 옮겨오려고요.

오늘도 이런저런 생각을 말로 참 많이 하면서 살았습니다. 막상 그 많은 말과 생각을 글로 써보려니 쉽지 않더군요.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 그때의 다짐을 다시 읽어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아 그런 생각을 했었구나 대견하기도 하네요. 더 정진하겠습니다.


내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어린 시절 기억을 돌이켜보면 난 그다지 글쓰기에 취미가 있는 학생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흔한 독후감 상 한번 받아 본 적 없는 것 같고, 제 아무리 무서운 선생님 아래서도 일기 숙제를 정성껏 해 본 기억도 없다.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난 이과로 고등학교에 올라갔다. 글쓰기를 공부하려는 싹이라고 이제라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과생임에도 수학보다 국어의 성적이 더 좋았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대학에서의 교양국어의 숙제로 1학년 매주 짧은 글을 읽고 원고지 8매에 한자어는 한자로 써서 제출하는 숙제를 꼬박 1년 한 것이 내 글쓰기 수련의 전부로 기억한다.

그런 내가 왜 글쓰기를 공부하고 싶었을까? 대개는 글쓰기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작은 조직의 장이라도, 혹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려면 글쓰기를 잘 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런 면에서 SNS시대에 글쓰기를 잘 해서 나를 뽐내고 싶다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긴 여정을 시작하는 이때, 좀 더 소박하고 작은 마음을 갖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기대가 커지고, 욕심이 생기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여 스스로를 원망하거나 금세 포기하는 평소의 성격이 드러나면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

우선은 종이와 연필을 벗 삼고 싶다. 하루하루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작은 조각들을 머리와, 눈에서 손끝으로 가져와 펜을 타고 사각사각 종이 위에 남겨두고 싶다. 순간순간, 매일매일 기록되어 글씨로 남겨지는 삶의 굽이굽이를 한 송이, 한 송이, 한 포기, 한 포기 남겨 훗날의 보물로 다시 보고 싶다.

둘째, 고통을 인내하고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도 즉각적인 결과를 탐닉해 온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삼다라는 공동체의 이름처럼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어느 것 하나 단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엉덩이 붙이고 오랜 시간 진득하게 무언가를 해낸 기억이 별로 없다. 꽤 좋다고 생각하는 머리에서 나오는 잔꾀에 의지 해 그때그때 살아왔다. 마흔이 되면서 아니 훨씬 그 이전부터 그렇게 즉흥적으로만 살아 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진득하게 깔고 앉아서 무언가 이루고 싶은 마음이 오래되었다. 그런 내게 글쓰기는 좋은 수련이 될 것이다.

셋째, 생각이 간결하고 논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갈등과 다툼이 많이 있었다. 말다툼도 해 보고, 교묘한 말장난으로 설득한답시고 오랜 논쟁도 해 보았다. 하지만 성찰 없는, 내 이익만 추구하는 말과 생각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다른 사람을 바꾸기는커녕 스스로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글을 읽고, 쓰고, 생각을 더해가는 수련을 통해 더 자라고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생각을 활자로 종이 위에 남기는 활동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독서하고 생각하고 글을 써내어 내 의견과 사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것을 잘 하기 위한 의도적인 수련을 해 내고 싶다. 선생님을 따라, 11명의 글벗들을 따라 삼다의 들판을 달려 글쓰기의 팔다리를 튼튼하게 만들고 싶다.

넷째, 나를 만나고 싶다. 결국 이 길의 끝에서 나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불만족스러운 나의 모습들, 미워했던 사람들, 즐거웠던 일들, 사랑하는 사람들, 오늘의 나를, 지금의 내 모습을 있게 한 수많은 갈피들을 꺼내어 그 모습 미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꺼운 마음으로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싶다. 삼다는 분명 거친 들판일 것이다. 가끔은 평탄한 곳도 있겠지만 하늘하늘 유유자적할 만한 곳은 아니겠지. 가파른 산등성이, 깊은 골짝, 거친 들마다 잡초 같은 꽃들을 피워 한 포기 물 주고 거름 주고 닦아주고 쓰다듬어 주면 어느새 들판 한가득 꽃도 피고, 풀도 자라고, 나무도 심겨 있겠지. 1년 후 잘했다, 수고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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