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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세징 Jun 22. 2024

노는 게 제일 좋아! 근데 언제까지..?

쾌락의 역설, 난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가


- 노는 게 제일 좋아!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약 5~7세 경, 나는 어머니께서 틀어주는 노래에 연년생 동생과 함께 이불 위를 뛰어다니며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신나는 노래에 맞추어 신나게 몸을 흔들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고, 어쩔 때에는 땀까지 흐른다.


어릴 적 움직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익힌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춤을 출 수 있는 장소에 가서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것을 종종 즐겼다.

맥주도 한잔 마시며 큰 음악 소리에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다 보면, 세상에 이보다 즐거운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움직이는 것 이외에 어떤 고민거리와 걱정도 떠오르지 않는다.



- 끝없는 재미, 그 이후에는?

대학생 때에는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중간/기말고사와 과제들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을 전부 내려놓고 춤추러 놀러 가는 일이 잦게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취업이 되고 나서, 일을 하지 않는 시간들에는 내가 하고 싶은 그 무엇도 가능하다는 생각에 놀러 나가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다. (한, 두 달에 한 번 정도 빈도에서 자주 놀러 갈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까지)


성인이 되어 놀러 나가다 보면 어렸을 때와는 다르게 나에게 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상황들이 많아진다.

나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자라 여러 경험을 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노는 상황 중에서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에피소드들 또한 생긴다.


자극적이고 매우 흥미로운 상황들은 나에게 큰 재미를 준다. 나의 외향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도록 하고, 이는 내 삶의 활력이 된다.

하지만 이런 고 자극의 도파민 추구가 과연 나중까지도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



- 쾌락의 역설

내 주변의 가까운 친구들은 나만큼 외향적이지 않거나, 일을 하는 시간이 다르거나, 본인의 성장을 챙기느라 시간이 부족하기에, 내가 놀러 가고 싶을 때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나는 나 혼자 놀러 나가는 방법을 선택했는데, 혼자서 나가서 놀다 보면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마음이 즐겁지 않다.


이전에는 놀러 나가는 것 자체가 나에게 설레는 일이었다. 나의 원래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 자체가 기대가 되고 상상만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혼자 놀러 나가는 것이 익숙해지다 보니,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고자극의 일이 아니라면 크게 즐겁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놀러 나가야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춤추며 신나게 놀지 않고 카페에 앉아 가만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나에게 일어난 이러한 과정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에피쿠로스의 ‘쾌락의 역설’이 떠오른다.


쾌락을 추구하다 보면, 더 큰 쾌락을 좇게 되고,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본래 있어야 할 나의 기본 상태가 쾌락 쪽으로 기울어,

원래라면 +5였을 기분이 이제는 더 이상 +5만큼의 역할을 못하고, 심지어 이 과정이 심해진다면 +5가 아닌 -(고통)으로 바뀐다는 것이 쾌락의 역설이다.



- 그럼 나는 평생 재미추구를 멈추어야 할 것인가

중학생의 열심히 공부하던 모범생 시절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시험기간에 책상엔 앉아 문제집을 풀지 않고 지우개를 쳐다보며 상상을 하는 것마저 즐거웠다.

하지만 작은 동선 작은 경험들을 하는 아이에서 나아가 성인으로 성장하게 된 이후, 세상에 재미를 주는 정말 다양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쾌락의 역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뜻대로 해석하면, 재미를 추구하지 말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재미없이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재미를 추구해야 할 것인가?


나는 그 시작을 쾌락 원점을 재미의 반대방향으로 보내는 것으로부터 해보고 싶다.

쾌락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쾌락의 원점이 쾌락 쪽으로 따라온다면, 내가 쾌락의 반대인 고통을 추구할수록 쾌락의 원점은 원래의 자리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고통을 추구하는 데 있어,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해보려고 한다.

조금은 지루하지만 독서실에 앉아있어 보려고 노력하고, 크게 맛은 없지만 생야채를 씹어먹어보기도 하고, 어쩌면 피곤하겠지만 꾸준히 운동을 하려고 해 보겠다.


고통을 추구하는 과정이 괴롭겠지만, 그 와중에서의 잔잔한 재미를 추구해보려고 하고, 또 이 과정으로 나를 성장시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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