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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금 Aug 03. 2020

지극정성으로 사랑받다가 버림받는 사람들

또 한번의 연애를 끝내며 생각한 것  


'버림받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글자수를 고려해 압축하다보니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 되었다. 제목에서 말하는 건 사실 나다. 내 연애에는 패턴이 있다.


 ① 혼자서 뭐든 잘하고 남의 말에 잘 휘둘리지 않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에게 끌린다. 

 ② 연애가 시작되고, 초반에는 상대방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것처럼 열정적으로 프로포즈한다. 

 ③ 3~6개월을 넘기며 그는 점차 시들해진다. 나는 불안하고 못마땅하다. 가끔 서운함을 표현한다.

 ④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 의지한다. 주말은 언제 시간이 날지 모르는 상대방을 위해 비워두고 다음 데이트는 언제 어떻게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주에 한번이라도 못 보면 서운하지만 자존심과 나를 우습게 볼까하는 걱정 때문에 제대로 표현하진 않는다. 그런데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나도 모르게 자꾸 표현한다.

 ⑤ 나를 잘 이해해주는 그에게 온갖 힘든 것들을 털어놓는다. 직장, 친구, 가족, 과거, 인간관계 등등. 

 ⑥ 그가 바빠진다. 점점 내 생활이 안 되고, 그가 보내는 카톡 하나하나 형태소 단위로 분석하고 의미를 둔다.

 ⑦ 어느 순간 이별이 찾아온다. 그들이 말하는 이유는 다 비슷하다. 여력이 없어서, 상황이 복잡해서, 바쁘고 시간이 없어서. 결국 다 똑같다. 마음이 식었다는 말이다.   


0.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생각해 볼 것들


'혼자서 뭐든 잘하고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자신감 넘치는' 

독립적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혹은 자기 것이 있는 사람들. 독립적인 사람들은 자기에게 닥친 문제를 척척 해결할 수 있지만, 필연적으로 고독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존중해주기를 원한다. 이런 사람과 연애를 한다면 이 부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자기 것이 있는 사람들은 역시 자기 것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파트너이기를 원한다.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인간관계, 인생이 충분히 다져져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내게 이런 것이 충분한지, 내 인생이 이미 튼튼해서 이 관계가 시작되면 달콤한 연애에 내 인생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지 고려해보자. 독립적인 연애는 메인요리가 아니라 디저트여야 한다.


경험상 나만의 인간관계 집단(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자주 보는 사이)이 2개 이하거나 정기적으로 즐기는 취미가 없는 사람들은 연애에 매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


1. 이별의 이유를 알고싶어 하지 마세요


'여력이 없어서, 상황이 복잡해서, 바쁘고 시간이 없어서'

다 의미없다. 그냥 마음이 변했다는 말이다. 그럼 이 사람들이 정말 잘해주니 재미없어서 마음이 식은 것일까?


 일단 '잘해준다'는 누구 기준인가? 나같은 유형의 특징 중 하나가, 내 마음대로 베풀어놓고 알아주길 원하고 같은 크기로 돌려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이다. 그 사람은 과도한 관심과 내 생활에 대한 온갖 tmi, 부정적인 일들, 어릴 때의 슬픔들을 알고싶고 공유하고 싶다고 말한 적 없다. 혼자 떠든 건 나고 이해해주길 바란 것도 나고, '이런 걸 말해버려서 날 싫어하면 어쩌지'라며 불안해하는 것도 나다. 


깊은 대화는 관계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고, 시간의 흐름과 관계의 깊이에 따라 전략적으로 풀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열번이 넘는 관계를 경험하며 늘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다. 천천히,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조심 하나씩 풀어야한다. 하지만 내가 충분히 완급을 조절했음에도 나의 깊고 어두운 부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사람과는 일찍 관계를 정리하자.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그냥 안맞는 거다. 욕심부리면 안 된다.    


2. 선택 옵션에 '이별'이 있는 사람들이 이기는 싸움 

나는 헤어짐이라는 옵션을 정말 진지하게 고민한 적 있을까? 지금 너무 좋고 행복하니까, 늘 내 입장을 말하는데에 조심스럽고 그의 눈치를 보기만 하진 않았나? 처음부터 마음을 주지 말라고들 하지만, 그건 너무 어려우니 마음을 이미 듬뿍 준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내가 흘려야 할 피가 많은 상황이라 할 지라도 나는 늘 이별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도망치라는 말이 아니다. 어떤 사안에서는 타협이 불가하고, 그게 나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피력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별을 옵션에 두고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나는 당신이 아니어도 잘 살수 있다'라는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3. 나도 모르게 의존하고 있었던 '내가 못하는 것'들

의지와 의존은 다르다. 나는 운전을 할 수 없고, 인간관계에 상처가 있으며 오피스 프로그램을 잘 다루지 못한다. 끈기있게 하나에 집중하고 성취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최근의 연인에게 가장 매력을 느꼈고 가장 의존했던 네 가지였다. 그는 운전을 능숙하게 했고 인간관계가 좋았으며 오피스 프로그램의 달인이었다. 꾸준히 공부를 지속해 커리어는 승승장구했고 자격증도 취득했다. 


나는 그의 문제해결 능력이 좋았고, 그가 나대신 내 문제를 해결해 줄떄마다 사랑이 깊어졌다. 그것은 의지라기 보단 의존이었다. 


내가 그에게 해준 것은 무엇인가? 그가 못하는 것을 내가 잘했었고, 그래서 그가 의지할 수 있었던 건 무엇인가? 그가 나의 특기라 여기고, 배우고 싶어한 부분이 있었나?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별이다. 


늘 '내 것'이 문제가 된다. 나만의 것이 없는 사람들, 내 인생이 사랑으로 매몰되는 사람들은 버림받는다. 

가슴 아프긴 하지만, 그런데 나도 이젠 행복해져야 하지 않을까. 행복해지려면 내 것을 만드는 게 우선인 듯하다. 이제부터는 내 것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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