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꿨던 모습의 어른이 되기까지

영화 '나의 소녀시대'

by 사과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노란색 표지의 '늑대의 유혹'을 읽으며 '반해원'이 얼마나 멋있는지를 한참 홍보했다. 그때 처음으로 인터넷 소설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터넷 소설, 줄여서 '인소'가 흥하던 시절, 반 아이들은 반해원파, 정태성파로 나뉘기도 했다. '내 남자친구에게'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애들도 여럿 봤다. 나는 인터넷 소설을 책으로 읽지는 않았고 후에 영화로 만들어진 것만 봤다. 강동원이 노란 우산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을 보고 느꼈던 충격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유행했던 인터넷 소설에는 전형적인 줄거리가 있다. 먼저, 반항적이고 거친 것만 골라하는 남학생이 등장한다. 알고 보니 그 남학생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아픈 과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의 사랑이 돈독해지려는 찰나, 남학생이 오래전부터 앓고 있던 병이 악화된다. 둘의 사랑은 잠시 멀어지지만 결국 다시 사랑을 확인하며 감동적으로 끝난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도 정확히 같은 패턴으로 흘러간다.


나는 인터넷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유치하게 느껴지는 장면을 볼 때면 오글거려서 끝가지 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나의 소녀시대'는 여러 번 볼 정도로 재밌게 봤다. 전형적인 패턴을 따라가는데도 왜 이 영화만 재밌는 걸까? 내가 인터넷 소설을 재밌게 보지 못한 이유는 공감하기가 힘들어서였다. 클럽을 가거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거나 하는, 미성년자인지 성인인지 알 수 없는 장면은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아니었다. 이 영화에도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마시지는 않고 '교복 입고 맥주를 마셔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대사로 적어도 고등학생이 맥주를 마시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게다가 그때는 일상적이고 소소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추억이 된 일들을 보며 공감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맹목적으로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연예인의 사진을 더 많이 사면 결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착각), 시험 보기 전 공부를 별로 못했다는 거짓말, 진실게임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저 아이가 나를 좋아하는지 알아보려는 술수.


물론 전형적인 장면도 있다. 롤러장에서의 패싸움,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을 지키기 위해서 감수하는 집단 폭행. 한참을 두들겨 맞은 후 유덕화 입간판에 옷을 덮으며 비를 맞지 않게 하려는 장면은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극적였다. 학생이 꿈꿀만한 판타지스러운 장면도 있다. 린전신이 '자기 모습은 자기가 결정한다'라고 외치며 선생님께 부당함을 호소하는 장면은 약간은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정당한 투쟁이라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어른이 되어서는 정당성을 투쟁하기는커녕 상사한테 말도 제대로 못 하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이라 공감했다.


그 많은 장면 중에서 내가 꼽은 명장면은 린전신과 쉬타이위가 찻집에서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서로가 엇갈리듯 통하듯 나누는 대화는 설레고 사랑스러웠다. 쉬타이위가 유덕화 열쇠고리를 린전신에게 줬을 때와 그 열쇠고리를 골랐을 때의 쉬타이위의 표정을 영화는 처음에 보여주지 않는다. 후에 회상 장면으로 쉬타이위가 수줍게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열쇠고리를 쿨하게 주고 돌아선 뒷모습을 보며 그의 표정을 상상했다. 내가 바라는 그 마음이길 바라며 마치 다시 첫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리고 두 사람이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났을 때는 내 첫사랑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쉬타이위가 유덕화를 가리키며 '내가 유덕화 보고 노래 불러주라고 할게'라고 말하는 장면을 볼 때는 둘만의 추억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떠올랐다. 쉬타이위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오랜만이네'라고 말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련하던지.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사진+001(수정).jpg 나의 소녀시절, 텅 빈 교실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한때는 현실이었던, 하지만 지금은 꿈처럼 느껴지는 시절의 나와 그 시절의 내가 꿈꿨던, 하지만 그 모습은 아닌 것 같은 현실의 내가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나도 친구들 또는 직장 동료들과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내가 꿈꿨던 이십 대 후반의 나는 더 멋있을 줄 알았다고. '그저 그런 직장, 그저 그런 삶, 그저 그런 사랑' 모든 게 여전히 그저 그럴 줄은 몰랐다고. 글쎄, 여기서 시간이 더 흐르면 지금 이 시간도 꿈같을까? 여전히 난 10년 후, 20년 후의 내 모습을 꿈꾼다. '그때가 되면 뭔가 버젓한 게 생기겠지', 혹은 '더 안정적 여지겠지' 하고 막연하게 기대하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나의 당연한 미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미래에 지금을 추억하면 역시나 즐겁겠지. 다시 만나도, 다시 가도 설렐 수 있는 좋은 추억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나의 모든 추억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真心爱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