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보는 나

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Shallow Hal)'

by 사과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내면이 아름다워야 진짜 아름다운 거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말한다, 얼굴과 몸매가 좋아야 내면이 아름다운지 알고 싶어 진다고. 한창 외모에 고민이 많던 시기에는 '내면이 아름다워야 진짜 아름다운 거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내면을 가꾸려 노력했다. 그러나 고민에 빠질수록 그 말이 신포도처럼 느껴지더니 급기야 '외모가 아름답지 못한 사람'의 자기 합리화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외모가 뛰어난(얼굴과 몸매가 뛰어난) 사람에게 더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눈이 아름다움을 쫓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이 '아름다움'이란 것을 살짝 비틀어 유쾌하게 풀어낸 영화가 바로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이다. 영화 속에선 사람의 외모가 그 사람 내면의 아름다움을 반영하는 척도가 되었다. 그럴 경우 말 그대로 내면이 착하면 외모도 착하고 내면이 추하면 외모도 추한, 내면과 외모의 정비례가 이루어진다. 한편으로는 편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내면만 가꾸면(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외모까지 가꿔지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내면과 외면이 정비례인지 아니면 반비례인지를 한눈에 알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게 당연한 건데도 영화를 보고 나니 갑자기 불만스럽게 느껴졌다. 우리가 누군가의 내면을 알기 위해 들이는 시간이 얼마나 많던가. 맘고생은 또 얼마나 하는지 '얼굴값 한다'며 혀를 찬 적도 많을 것이다. 사람 속을 알기란 그토록 어려워서 차라리 외모라는 마법에 빠지는 걸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면 적어도 외모 하나는 확실하니까.


20191216_202956.jpg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람블라 거리에서 파는 대왕 상그리아. 내겐 너무 모자랐던 상그리아.


영화 속에서 로즈메리는 첫 등장부터 할의 눈으로 보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래서 로즈메리의 원래 외모가 처음에는 뚜렷하게 나오지 않다가 점점 조금씩 드러낸다. 로즈메리와 할이 처음 만난 날, 로즈메리는 가게 앞에서 남자들의 놀림을 받기도 하고 할에게 자신이 예쁘다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한다.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많지만 로즈메리는 유독 칭찬을 불편해한다. 예전에 '스물다섯까지 해야 할 스무 가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은 한 여자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게 바로 '스물다섯까지 해야 할 스무 가지' 중 한 가지이다. 그게 뭐 대단한 거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책은 다르게 얘기한다. 뚱뚱한 사람이 사람 많은 곳에서 이런 음식을 먹는 것은 어렵다고. 로즈메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잘 모르면서 나를 판단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세상,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


마법에서 풀려난 할은 친구에게 말한다, 내 눈에 예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다고. 우리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고 있다. 그 시선은 나에 대한 평가가 되어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우쭐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선이 내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든 영향을 미친다는 것 자체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 세상 속에서 나를 진심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평가 대상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물론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사랑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사랑은 용기가 되는 법이다.


만약 내 주변에 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지금 내 모습처럼 보일까? 더 예쁘게 보일까? 아니면 못 생겼을까? 내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겠다. 요즘 들어 내 인성도, 성격도, 진심도 헷갈릴 때가 많아서 나조차도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어렵다. 그래도 지표란 것을 만들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나이가 들면 내면이 결국 얼굴로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그때가 됐을 때 아름다운 외면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