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고 싶은 그대에게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by 사과실

지금까지 나는 세 번 성격이 바뀌었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소심한 성격 탓에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게 어려워서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러다 내가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용기를 발휘하며 성격이 바뀌었다. 두 번째는 대학생 때다. 온 마음과 몸이 지칠 정도로 열심히 살았는데 돌아보니 여유가 없더라. 그걸 교환학생 가서야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목표지향적이었을 뿐 삶을 즐기지는 못했다는 걸. 그래서 여유를 가지며 욕심을 덜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성격이 바뀌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단연코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하겠는데 세 번째는 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 너무 단호하고 차가운 사람이 됐는데 그걸 다양한 색으로 칠해 가릴 수 있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세 곳에서 일했다. 처음 두 곳은 직원의 90프로가 여자였다. 그래서 팀장급도 부장급도 전부 여자였다. 2년 넘게 거의 여자들하고만 일하다가 지금의 직장으로 왔다. 지금 직장은 70~80프로가 남자다. 팀장님도 부장님도 회장님도 다 남자다. 지금의 직장으로 첫 출근하던 날, 다소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남성, 여성을 구분 짓고 싶지 않고 그런 식의 구분이 위험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다) 이전 회사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사용하는 단어가 거칠고 굉장히 수직적이고 회장님은 너무 절대적인 존재였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섬세하게 기분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 가끔씩 섬세하게 신경 써야 할 때면 그냥 확 부딪히고 말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사용설명서 본문2.jpg 예전 회사에서의 내 책상. 뒤편에는 가장 순수하게 즐거웠던 시절의 한 곳을 담아뒀다.


다수의 이성과 일을 할 때면 유독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행동이나 말씨, 특히 사소한 미소 하나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친절해도 꼬리 친다고 오해받을 수 있고 친절로 얻게 된 호감을 이용해서 성공하면 여우라고 손가락질받는다.

쟤 완전 여우잖아. 저런 사람인지 진짜 몰랐어.

저 사람의 성공을 질투해서, 그 사람의 성공을 정당화하고 싶지 않아서 깎아내리는 비겁한 비난일 수 있다. 사람들의 시기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나에 대한 소문이 무성한 것은 거슬리기에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도 여우가 돼가고 있구나 싶을 때가 있다. 사회초년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마음에 없는 소리는 절대 못하는 사람이었다. 뻔하고 의미 없는 칭찬을 하는 것이 불편했다. 지금도 표정에서 티가 날 때도 있지만 가끔씩은 나 자신도 소스라칠 정도로 빈말을 자연스럽게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여우가 되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속에 없는 말은 못 하더니 이제는 웃으며 잘만 한다. 사람의 장점을 더 잘 찾게 된 것이라고 변명해본다.


빈말만 잘하는 사람으로 변한 건 아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줄도 알게 됐다. 문자 그대로만 읽으면 정의의 사도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 일이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의 입장에서 또는 나의 입장에서 불리하거나 불편하다고 생각되면 딱 잘라 거절한다. 내가 차갑고 단호한 사람이 됐다는 것을 처음 알아챘을 때는 회의를 느꼈다. 꼭 이렇게까지 변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이제는 나의 그런 모습이 편하다. 내 삶을 더 편리하게 해 준다. 그래서 좀 정 없어 보이더라도 나 편한 걸 추구하게 되었다.


어느 기사에서 읽은 바로는 '남자사용설명서' 영화가 처음에는 블랙코미디였다고 한다. 영화를 대중적으로 만들고자 로맨틱 코미디로 바꾼 것이다. 남자들이 많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자의 고군분투. 요즘 들어 특히 성(性)의 대립이 나타나는 주제는 상당히 민감하다. 역시나 이 영화에 대한 의견도 많이 엇갈리는 듯하다. 영화의 제목은 '남자사용설명서'지만 그 범위를 넓혀 '사람'사용설명서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리고 '사용'이라는 단어를 '어필'로 바꿔보자. 직장에서 나를 어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을 정말 잘하거나 확실한 분위기 메이커가 되거나.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들어와야 그다음이 진행된다. 눈에 띄어야 일을 맡기고 싶고 말도 더 들어주게 된다. 비록 영화에서 주인공이 남자의 눈에 드는 방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직장에서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은 업무보다 우선되기도 한다.


어느 단체를 가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예전에는 어떤 사람이든 나를 떠올릴 때 미소가 나오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너무 힘들다. 일을 하나씩 해나갈수록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은 늘어갔고, 다른 사람의 감정 보단 내 감정만 생각하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에서는 멀어지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회사에서 꼭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회사에서의 '좋은 사람'은 '쉬운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쉬운 사람'에서만 멀어진 게 아니라 '좋은 사람'에서도 멀어졌다는 걸 잊고 있었다. '좋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른 의미에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했는데 말이다. 언젠가는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또다시 변화를 겪게 되더라도 스스로 중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