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여운 여인'
고등학생 때였다. 언어 영역 모의고사를 풀던 중 한 문제를 발견했다.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인 '피그말리온'에서 발췌한 지문이었다.
'당신이 나를 꽃 파는 소녀로 대한다면 나는 꽃 파는 소녀가 되지만, 당신이 나를 공작부인으로 대한다면 나는 공작부인이 될 거예요'
그 문제가 뭘 물어보는 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지문만은 아직까지 기억난다. 그러다 얼마 전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를 볼 기회가 생겼다. '피그말리온'을 영화화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영화다. 하류층에 대한 극도로 무례한 태도와 히긴스 교수의 이기적인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오드리 헵번의 입으로 10년 전 지문에서 봤던 대사를 듣는 것은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영화 '귀여운 여인'을 보면서 다시 오드리 헵번의 대사가 떠올랐다.
영화 속 비비안이 사는 곳은 우리가 어렸을 때 꿈꾸던 곳은 아니다. (비비안은 자신의 직업이 '어린 시절 꿈 Childhood dream'은 아니라는 말을 한다) 마약에 중독되어 숨이 끊긴 사람에 대한 애도 조차 없는 곳, 집세를 가져가 마약을 사는 룸메이트.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정한 삶에서 비비안은 벗어나고 싶다. 흑백 고전 영화를 보며 가만히 누워있는 것을 좋아하는 비비안을 보며 왜 그런지 나름 생각해봤다. 비비안은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 도시인 할리우드에 살고 있다. 현재, 바로 지금 가장 따끈한 영화를 볼 수 있는 도시에서 굳이 오래된 영화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비안이 살고 있는 현재는 아마 내가 생각하는 할리우드처럼 반짝이지는 않을 거다. 그런 비비안에게 현재라는 것은 벗어나고 싶은 순간일 뿐이며 막막한 미래보다는 지금을 바꿀 수 있는 과거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은 아닐까.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던 비비안은 에드워드를 만나면서 삶이 달라진다.
'귀여운 여인'을 숱하게 봤지만 이번에 볼 때는 이야기의 전개가 다르게 다가왔다. 비비안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천박했던 비비안이 교양 있는 비비안으로 변하는 이야기로. 사실 비비안이 보이는 만큼 천박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눈빛과 태도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더 천박하게 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먼저, 비비안은 외양부터 바꾼다. 지루하지만 고상한 옷을 입고 톰슨 지배인의 도움으로 식사 매너를 배운다. 책상이나 식탁에 앉는 것이 습관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습관도 보이지 않는다. 비비안은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마다 비비안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처음에 톰슨 지배인은 비비안을 '호텔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지만 가장 큰 조력자가 되며 비비안과의 작별 인사를 할 때는 손등에 키스를 한다. 반면에 스터키는 처음에 비비안을 에드워드의 데이트 상대로 여기지만(산업 스파이로 오해해서 경계하기까지 한다) 비비안의 직업을 알게 되고 나서는 함부로 대한다. 그리고 비비안의 남자, 에드워드 루이스. 그는 비비안을 한 번도 창녀로 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비비안에게 애인이라고 하기에는 대기조에 가까운 역할을 제안했을 때 비비안은 말한다, '방금 그렇게 대했잖아요.'
영화는 에드워드가 비비안을 진심으로 대하면서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나는 지난날의 내 태도를 떠올렸다. 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혹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가치를 깎아내리지는 않았는지.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다.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좋은 얘기보다는 나쁜 얘기를 더 담아두는 것이 사람인지라 내 기억과 마음속에도 지우지 못한 나쁜 얘기가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좋은 얘기를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비난이었다면 그 사람은 나를 잘 모르는 것이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