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사랑'이라는 공식

영화 '라스트 크리스마스'

by 사과실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캐럴이 뭔지 묻는다면, 나는 20년째 Wham의 Last Christmas라고 답한다. 징글벨과 같은 캐럴 세계의 고전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배운 캐럴이기도 하지만, 멜로디 자체가 크리스마스로 분주하면서도 설레는 거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조지 마이클의 유명한 캐럴을 빌려 쓴 것을 시작으로 영화 내내 조지 마이클의 명곡을 들려준다. Heal the pain, Too funky, Fantasy, Wake me up before you go-go, Praying for me 등. 우리의 귀를 조지 마이클의 곡으로 꽉꽉 채워 넣은 영화는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 넣었다.


영화는 세 가지의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연애감정으로서의 사랑으로 시작해 다른 두 가지의 사랑으로 넓어진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연애 감정으로서의 사랑

영화에는 대표적으로 두 커플이 등장한다. 케이트와 톰, 그리고 산타와 보이.

케이트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인생을 살며 의지를 가지고 뭔가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톰은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일도 하고 봉사도 하며 시간과 마음을 알차게 쓴다. 너무나 다른 톰과 케이트지만 톰은 케이트를 응원하며 케이트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도움을 준다. 케이트는 톰의 영향을 받아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산타와 보이의 사랑은 뜬금없을 정도로 운명적이다. 둘이 처음 마주한 순간은 세상의 모든 전구가 그들을 비추고 있는 것처럼 강렬하다. 그들의 사랑은 산타의 변화(스킨십이 늘어난다든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부주의한 행동으로 물건을 망가뜨리고, 오디션에 늦어 헐레벌떡 나오다가 가게 문도 제대로 잠그지 않는 케이트. 케이트의 상사인 산타의 말을 빌리자면 케이트는 '뭐든 알게 뭐냐(You don't care about anything)'는 식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케이트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케이트를 재워줬던 친구들은 케이트의 부주의한 행동 때문에 아끼는 것을 잃어야 했고 산타는 케이트의 잘못을 덮고 보험금을 받기 위해 거짓말까지 했다. 케이트는 내가 가장 견딜 수 없는 특징을 가진 사람이다. 따라서 영화의 전반부를 보는 내내 화가 나는 것을 참아야 했다.

케이트는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여기며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전쟁을 피해 이민 온 엄마에게 KGB(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라며 농담을 하고, 심장 수술에 관해서도 자신의 심장이 버려진 것에만 초점을 맞춰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기만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는 모른 채 자기 생각만 하던 케이트가 톰을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이 좋아할 일을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에게만 향해있던 생각을 비워내고 주변을 챙기는 여유를 담은 것이다. 그렇게 케이트는 주변으로부터 다시 인정을, 그리고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을 다시 베풀 줄도 알게 된다. 동시에 케이트는 자기 자신을 올바른 눈으로 보게 된다. 휩쓸리듯 살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시간을 갖는다.


가족에 대한 사랑

줄곧 케이트는 가족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케이트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품고 있는 불만 때문이다. 그들의 불만은 마르타(케이트의 언니)의 승진 축하 파티에서 제대로 폭발한다. 파티에서는 험한 욕(욕의 수위가 높아 원문을 옮길 수 없었다)이 등장하는데 가족들이 한 번씩 그 욕을 입에 담는다. 그들이 욕을 입에 담는 순간을 살펴보면 그들이 가진 불만의 근원을 알 수 있다.

케이트는 자신의 삶의 태도를 비난받고 카타리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마르타는 부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는데도 대놓고 케이트가 더 똑똑하다며 케이트의 편만 드는 엄마에, 아빠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택시 운전기사를 택한 자신의 희생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그리고 엄마는 자신이 준비한, 자신의 노력이 들어간 파티에서 혼자 외로이 남겨진 것에 화를 느낀다. 그들은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화를 느낀 것이다.

케이트는 톰의 조언대로 자신이 아끼는 가족들에게 손을 내민다. 마르타에게 용서를 구하고, 엄마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동반자가 되어준다.


크리스마스2 오나먼트 가게.jpg 바르셀로나의 크리스마스 장식품 가게




영화 곳곳에는 이민자가 등장한다. 주인공인 케이트를 비롯해서 케이트의 가족들, 직장 상사인 산타, 케이트와 썸을 타는 톰, 산타가 만나는 '보이', 케이트가 타는 버스 운전기사까지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다. 영국의 이민자 문제는 브렉시트가 있기 전부터 존재해왔다.

예전에 B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이민자들이 영어를 배우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영국에서 살지만 정작 영어를 할 줄은 모르는데, 일주일 동안 영국 가정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영어를 배우는 것이다. 일주일이 지나고 며칠 후, 이번에는 가정집 호스트가 이민자의 집에 머문다. 영어학습이라는 표면적 목표 아래 서로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들 중에는 이민자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던 호스트도 있는데 이민자와 함께 하면서 마음을 열고 그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 한다.

케이트가 일하는 크리스마스 장식품 가게의 사장인 산타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하며 그동안 다양한 가게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음을 얘기한다. 산타의 진짜 이름이 산타가 아니었음에 놀란 케이트에게 산타는 웃으면서 예전 이름들을 얘기해주지만 그 장면이 마냥 유쾌하게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케이트는 카타리나라고 불리길 거부하며 현재 자신이 사는 곳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려고 한다. 한편, 산타는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끊임없이 바꿨다. 자신의 진짜 정체성은 묻어둔 채 남들에게 더 편리한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살았던 것이다.


크리스마스6.jpg 바르셀로나의 크리스마스 장식품 가게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크리스마스 장식품 가게를 갔던 적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크리스마스 마을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캐럴이 하루 종일 흘러나오며 반짝이고 아름다운 장신구들이 벽면을 가득 메웠다. 가게를 한 바퀴 돌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금방 갔다. 가게에 있는 장식품을 위해 엄청나게 큰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영화 속 케이트가 일하는 가게에 들어선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일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가게 이름도 Yuletide(크리스마스 시즌을 일컫는 용어)가 아닌가.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겠지! 어쩌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하는 일도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의 문제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나를 결정짓고 내 주변을 바꾼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곱씹을수록 와 닿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