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 명료한 디지털 드로잉을 하고 있기에 언젠간 컬러링북을 출간하겠다는 희망사항이 있었는데, 느낌을 보기 위해 직접 집에서 "컬러링 더미북"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책을 만든다고 하면 거창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가벼운 "zine" 형식이라면 집에서 아주 쉽고 예쁘게 책을 만들 수 있다.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만들어도 좋고, 무료로 배포된(혹은 구매한) 컬러링 도안으로 집에서 나만의 컬러링북을 간편하게 만들어볼 수 있다!
실제로 책을 제작하기에 앞서 가제본 형식으로 만든 샘플북을 뜻한다. '모조의, 가짜의'란 의미의 더미(Dummy)와 책(Book)의 합성어로 우리나라에선 더미북이 아직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아트북을 대상으로 한 더미북 어워즈(Dummy Book Awards)도 있다.
[순서]
1. 컬러링북 기획하기
2. 모형북 만들기
3. 종이 선택하기
4. 파일 준비하기
5. 프린트하기
6. 실제본하기
7. 검토 및 완성
컬러링북의 사이즈, 페이지, 도안종류, 기타 정보, 종이 등을 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직접 그린 근대건축물 시리즈 <Older Than Old> 중 7개의 도안을 선택했다. 사이즈는 A4를 반 접은 A5 판형으로, 종이는 미색 용지로 계획했고, 발행정보도 깨알같이 넣어주기로 했다.
모형북은 아주아주 중요하다. 모형북을 만들어 두면 헷갈리지 않고 작업할 수 있다. 연습장을 대충 잘라서 페이지별로 들어갈 그림 정보를 기재한다. 표지와 7개의 도안, 발행정보를 담기 위해서는 총 20페이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20페이지의 A5판형 컬러링북을 만들기 위해서는 총 5장의 A4용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모형북도 5장만 있으면 된다. 프린트할 때 헷갈리지 않도록 [종이번호(1-5)], [페이지번호(1-20p)], [도안이름]을 모형북에 적어준다. 뒤비침을 방지하기 위해 도안은 오른편에만 인쇄하기로 해서 왼편은 비어있게 될 예정이다.
집에 있는 일반 A4 복사용지로 해도 무방하지만, 선택권이 있다면 종이를 고민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이래저래 구하게 된 종이들이 있어 총 4가지 종이로 먼저 테스트해 봤다. 체크할 점은 (1)종이의 색깔(미색/백색 정도)과 (2)종이의 두께, (3)색칠했을 때 얼마나 색감이 잘 나타나느냐였다. 도안 하나를 각각의 종이에 인쇄하여 색칠해 보았다. 색연필이 잘 받고, 빈티지 느낌을 살려주는 - 외국에서 물 건너온 - 미색 인쇄용지(83gsm)로 최종 선택했다.
참고로, 종이는 보통 평량(gsm)이 높을수록 두꺼운데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A4 복사용지는 대체로 80gsm 이다. 종이가 두꺼울수록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페이지수가 많아지면 중철제본은 어려워진다.
다음으로는 프린트할 디지털 파일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포토샵을 사용했지만, 배경이 투명한 PNG 파일형식의 도안만 있다면 워드나 한글로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 문서서식을 [A4 사이즈 가로형]으로 지정하고, 반반 나눠서 도안을 삽입하면 된다. 나는 포토샵으로 A4 서식을 만들고, 준비된 컬러링 도안(PNG)을 가져와서 정해둔 순서대로 레이어를 쌓아준 후, 헷갈리지 않도록 레이어마다 [도안이름], [종이번호]를 명시해 주었다. 프린트할 때는 프린트될 해당 레이어만 '숨기기'를 해제하여 인쇄했다.
컬러링북은 '선'만 프린트되기에 인쇄품질에 크게 좌우되진 않지만, 기왕이면 CMYK에 인쇄용 해상도인 300ppi로 설정(포토샵/일러스트의 경우)하는 것을 권장한다. 여백은 0.5mm가량 두고 그림을 정렬해야 프린트할 때 잘리지 않는다.
드디어 도안을 프린트할 차례이다. 이 과정이 가장 헷갈리므로 미리 만들어 둔 모형북을 보며 [종이번호]를 기준으로 차근차근 프린트한다. 나의 컬러링북은 총 20페이지이기 때문에 총 5장의 종이 앞뒷면을 번갈아가며 인쇄했다. 참고로, 포토샵으로 작업했을 경우에 도안이 잘릴까 걱정된다면 프린트 설정에서 '미디어에 맞춰 비율조정'을 체크하면 된다.
<프린트 순서>
[종이1] 앞면 프린트 -> 뒤집어서 뒷면 프린트
[종이2] 앞면 프린트 -> 뒤집어서 뒷면 프린트
...
[종이5] 앞면 프린트 -> 뒤집어서 뒷면 프린트
[종이1~5] 앞면 일괄 프린트 -> 뒤집어서 뒷면 일괄 프린트 해도 무방하지만, 처음이다 보니 여백이며 용지 방향이며 체크하며 한 장 한 장 인쇄했다. 프린트를 마치면 모형북을 옆에 놓고, 각 종이의 앞뒷면이 계획대로 잘 나왔는지 확인한다.
프린트까지 마쳤다면 제본의 과정만 남았다. 실제본은 생각보다 정말 쉽다! 그리고 아주 예쁘기도 하다. 전문 실제본 용품이 있지만, 집에 있는 실과 바늘로도 실제본을 충분히 예쁘게 할 수 있다. 유튜브에 '실제본 하는 방법'을 검색하면 10분 만에 배워서 따라 할 수 있다.
<실제본 재료>
프린트한 도안들, 두꺼운 바늘, 두꺼운 실, 레터오프너, 손수건, 자, 연필
나는 표지와 내지 사이에 일명 '간지'를 삽입하려고 반투명한 유산지도 준비해 두었다. 아트프린트 사진을 보호하는 용으로 썼던 종이인데, 이런 간지가 있으면 첫 장이 오픈되기 전 막간의 설렘을 느낄 수 있다. 바늘은 중간~대 정도의 사이즈가 적당하고, 실은 두툼한 걸로 해야 튼튼하다. 마침 언니가 알록달록 예쁜 색실을 나눔 해줘서 무지갯빛 실로 제본을 하기로 했다. 가능하면 책의 내용물과 가장 잘 어울리는 톤의 실을 고른다.
<접지>
프린트한 도안을 한 장씩 반으로 접어서 미리 정해놓은 순서대로 겹쳐준다. 이때, 양끝 모서리를 잘 맞춰서 살짝 접은 후에 레터오프너로 슥슥 야무지게 밀어준다. 레터오프너가 없다면 커터칼 밑면 같은 날렵하고 묵직한 물건을 이용해도 된다. 도구 없이 접으면 자잘한 주름이 생겨 안 예쁠 수 있다.
<구멍 뚫기>
도안들을 잘 겹쳐준 후, 실제본을 하기 위한 구멍을 뚫어줘야 한다. 간격은 설정하기 나름이지만 1.5cm 정도가 적당하고 예쁜 것 같다(아래 사진은 1cm 간격). 자와 연필로 구멍을 표시한 후, 바늘로 구멍을 숭숭 뚫어준다. 바닥이 딱딱하면 바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종이 아래 손수건이나 천을 받친 후 진행한다.
<바느질하기>
구멍을 다 뚫었으면 아래서 두 번째 구멍(바깥에서 안쪽으로)부터 시작해서 안팎을 교차하며 바느질을 해주고, 시작점으로 돌아와 매듭을 단단히 짓는다. 컬러풀한 색실로 엮으니 컬러링북의 느낌이 한층 화사해졌다.
(자세한 실제본 방법은 글로는 설명이 어려워 제가 보고 따라한 유튜브 링크를 아래 첨부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YhmcCMkDu4&t=355s
실제본이 튼튼하게 잘 되었는지, 넘길 때 불편함은 없는지 검토를 마치면 드디어 나만의 컬러링북 완성이다. 직접 컬러링을 할 때도 한 장씩 낱장으로 하는 것보다 이렇게 컬러링북으로 만들어 두면 소장용으로도 좋고, 선물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가족이나 친구 중에 색칠공부를 즐겨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안들을 직접 책으로 엮어서 선물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보통 컬러링북을 사면 한두 장 하고 방치하기 십상이니, 어쩌면 시중에 나오는 두꺼운 컬러링북 보다 훨씬 가볍고 특별한 선물이 될 수도 있다.
정식출판은 아니지만, 표지까지 간단히 만들어서 <컬러링진 더미북 에디션>으로 이름 붙여 완성했다. 이번에는 소장용으로 2권을 만들었고, 잘 다음고 다듬어서 다가올 2월 “각양각책 북페어”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작고 소소한 더미북이지만 이 컬러링북을 만나는 분에게 "핸드메이드 컬러링 zine"이라는 특별함으로 다가가면 참 좋겠다.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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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 @saha.ffff
아날로그 로맨스, 디지털 드로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