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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하 Dec 25. 2021

빛이 되는 당신에게

조해진 소설 「빛의 호위」

안녕하세요, 사하입니다. 열두 번째 편지를 보내요.

크리스마스입니다. 살에 닿는 바람은 아릴 만큼 시려도 이맘때의 풍경은 언제나 따뜻한 주홍빛이죠. 한기에 버석버석해진 마음도 괜시리 들떠오르구요. 캐럴이 들려오자 전시戰時에도 총을 내려놓았다던, 크리스마스니까요. 가난한 아이를 향한 깜짝 선물이나 익명으로 기부된 몇 억짜리 수표처럼 훈훈한 일화를 주워듣기 적절한 때죠. 사랑, 용서, 희망 같은 단어가 뉴스에 출몰하는 드문 날이요.

당신에게도 마음이 말랑해지는 소식을 전하며 아직 세상은 살만 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요. 저는 생겨먹기가 비관과 가까워서 말이죠. 각종 미담들이 들릴 땐 감동을 반쯤 받다가도 흡, 참아내는 요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 봤자 세상은 더러운 곳, 속지 않겠다는 심정이랄까요. 적고 보니 애가 왜 이리 꼬였나 애잔해집니다만 어쨌든 제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잖아요. 비관을 옮겨 쓰기엔 거룩한 날이죠. 고로 저도 따뜻한 이야기를 한 번 전해보고자 합니다. 사람의 작은 호의가 사람을 살리는, 거짓말처럼 빛나는 이야기요.

조해진의 소설 「빛의 호위」는 흰 눈이 흩날리는 공항에서 시작돼요. 주인공 ‘나’는 새하얀 풍경으로부터 희미한 오르골 멜로디와 함께 누군가를 떠올리죠. 그의 이름은 ‘권은.’ 일 년 전, 잡지사의 기자였던 ‘나’가 인터뷰한 사진작가예요. 분쟁지역을 다니며 전쟁이 곧 얼굴이 된 사람들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권은은 ‘나’에게 묘한 기시감을 남기죠. 그리고 일 년 뒤, 크리스마스의 열기가 남은 거리에서 두 사람은 재회해요. 그 두 번째 만남에서 권은은 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를, 권은 자신과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권은이 소개한 다큐멘터리는 2009년,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던 구호품 트럭에 탑승했다가 피격되어 사망한 유대계 미국인 ‘노먼 마이어’의 이야기에서 시작되는데요. 구호품 구매를 위해 전 재산을 쓴 노먼 마이어는 안타깝게 소멸된 정의이자 위대한 희망의 상징물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을 향한 사람들의 칭송을, 그의 어머니인 ‘알마 마이어’는 ‘천진한 기만’이라 일축하죠.


“사람들이 노먼을 시대의 양심이니 유대인의 마지막 희망이니 하는 수식어로 포장하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어요. 그런 거창한 수식어 뒤에 숨어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정의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건, 뭐랄까, 나에겐 천진한 기만 같아 보였죠. 알려했다면 알았을 것들을 모른 척해놓고 나중에야 자신은 몰랐으므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빛의 호위」 중.


알마 마이어는 곧이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젊은 시절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는 1940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갈 위기에 처해요. 그의 연인인 ‘장’이 마련해준 지하창고에 대피한 채 알마 마이어는 ‘생활’이 아닌 ‘생존’을 이어가죠. 컴컴한 어둠 속에서 유일한 빛이 되어준 것은 장이 목숨을 걸고 몰래 건네주던 악보였어요. 장의 악보로 연주하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알마 마이어의 고백을 들으며, ‘나’는 비로소 기억해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이야기의 끝에 어떻게 권은과 자신이 나란히 서있을 수 있는지 말이죠.

열세 살, 반장이었던 ‘나’는 담임의 명령으로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 동급생 아이의 집에 찾아갑니다. 캄캄한 방 한 칸에는 몸을 웅크린 아이와 빛을 내며 돌아가는 오르골만이 놓여있죠. 유일한 보호자인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은지 오래고, 아이는 보호시설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뿐입니다. 어떤 어른도 발 들이지 않는 외딴 그 방으로 ‘나’는 몇 번을 더 걸음 해요. 별 다른 이유도 대책도 없이, 그냥 아이가 죽을까 봐 무서워서 말이죠.

어느 날 ‘나’는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를 훔쳐 아이에게 가져다줍니다. 카메라를 팔면 돈이 될 수 있다고 믿고서 말이죠. 하지만 아이는 그 말을 듣지 않았어요. 셔터를 누르는 순간 숨어있던 빛들이 모여드는 그 마법 같은 순간에 매료되고 말았거든요. 그렇게 더 많은 빛을 찍기 위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그 아이, 결국 사진작가가 되어버린 그 아이가 바로 권은이었던 겁니다.

장의 악보로 살아난 알마 마이어의 이야기, ‘나’의 카메라로 살아난 권은이 이야기가 겹쳐지며 평행선을 그리고 있죠. 하지만 이 소설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직선의 모양이 아닙니다.

소설은 다시 노먼 마이어의 이야기로 돌아가 그가 구호 차량에 탑승하게 된 이유를 밝히는데요. 전쟁터로 오기 전 노먼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의 은인인 장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요. 장을 기억하려는 시도로 그는 장이 그의 인생에서 했던 가장 위대한 일,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일’을 재현하고자 마음먹습니다. 반장의 카메라를 들고서 빛으로 나아간 권은이 전쟁의 그늘 아래 서있는 삶들을 좇아 플래시를 터뜨렸듯이 말이에요. 타인에게 진 빚을 빛으로 바꾸어 또 다른 타인을 비추는, 무한히 생성되는 빛의 호위들이 장과 알마, 알마와 노먼, 그리고 ‘나’와 권은을 감싸고 있죠.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잠깐 스쳤다 사라지는 유성의 꼬리가 아닌, 점점 더 깊게 빛나는 나선 모양의 은하입니다.

사람의 작은 호의가 사람을 살린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차마 비관할 수 없는 이유는, 제게도 그러한 빛의 순간들이 무수히 쌓여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조그만 카메라와 장의 허름한 악보처럼, 거창한 윤리도 비범한 희생도 심오한 정의감도 아닌 ‘내 앞에 있는 너를 적어도 혼자 내버려 두진 않겠다’는 최소한의 호의와 예의. 작고도 드문 그 빛의 호위에 둘러싸이며 지금껏 살아왔으니까요. 그 빛을 갚는 마음으로 계속 살아가고 싶으니까요. 저 또한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싶으니까요.

몇 억 겹의 원을 그리며 빛나는 호의와 예의에 대한 이야기, 어떠셨나요. 어쩌면 당신과 나는 이미 그러한 빛의 호위로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고 하면 허황된 말일까요. 허황되더라도 봐주세요. 오늘은 크리스마스잖아요. 따뜻한 상상으로 몸을 데우기 좋은, 그런 날이잖아요.

달콤한 캐럴과 주홍빛 조명으로 가득 찰 오늘 하루 당신에게도 빛의 호위가 있기를, 그 빛으로 당신 또한 빛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021.12.25. 사하 보냄.


P.S.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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