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레센도>(Crescendo, 2023)
안녕하세요, 서른네 명의 구독자님과 누구든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저는 사하입니다.
3월의 허리를 지나고 있습니다. 바람에 스민 늦겨울의 독기는 수그러들고 나무마다 봄의 징후처럼 싹들이 솟아나고 있네요.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봄은 시작의 계절이라고도 하는데요. 무엇이든 시작하셨다면, 그 마음이 볕에 말린 새 이불처럼 오래도록 빳빳하기를 바라봅니다.
한 가지 질문드리겠습니다. 경쟁을 좋아하시나요? 스포츠 게임을 즐기신다면 경쟁과 상성이 맞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저의 경우 경쟁과 상극인 타입인데요. 누군가에게 지는 것도 언짢지만 누군가를 이기는 것도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패자'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할까요. 다 같이 나란히 손을 잡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바보 같은 환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축이죠.
제가 유별난 평화주의자인 것은 아니고요. 어릴 땐 만화나 드라마 속 경쟁관계를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허구의 세계관에는 '인과응보'의 원리가 작동하는 법니까요. 평범하고 성실한 주인공이 오만하고 타고난 상대를 이기고 마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편안하잖아요. 그런 경쟁이라면야 무릇 타당하지요.
그러나 현실의 경쟁은 다릅니다. 오늘은 마땅한 이치가 없는 경쟁의 이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데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진행 과정을 담은 영화 <크레센도>와 함께해보려고 합니다.
전 세계 피아니스트 유망주들이 모이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매우 고단한 여정으로 짜여있습니다. 예선을 통과한 서른 명의 연주자들은 총 4개의 라운드를 거치는데요. 일종의 서바이벌입니다. 각 단계마다 서른 명은 열여덟 명, 열두 명, 여섯 명으로 줄어들고 최종적으로 세 명이 메달을 획득하는 수순이죠. 기력을 다해 40분에 달하는 독주회를 마치고 한 단계를 올라가도 다음 단계에서는 또 다른 기량을 보여주어야 하니 참, 고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승하면 피아니스트로서 인생 역전이기에 이쯤 역경은 필연으로 여겨지죠.
익히 아시듯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금메달은 한국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에게 돌아갔는데요. 당시 열여덟 살로 최연소 우승을 거머쥔 임윤찬의 남다른 경력을 고려하면 영화의 중심도 그에게 맞춰져 있을 것 같죠. 하지만 영화는 승자의 영웅담보단 예술가'들'의 경험담에 가깝습니다. 연주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승패가 나뉘는 경쟁의 원칙이 미워지죠. 이 영화에는 인과응보의 편안한 원리가 없거든요.
연주자들은 각자만의 연유로 음악과 사랑에 빠지는데요. 침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방방 뛰던 어린 자신을 부모님이 지역 음악 학교에 입학시키면서 피아노와 만난 사람도 있고,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아 길목에 버려진 피아노를 주워 연습해 온 사람도 있습니다. 국적도 사연도 다르지만 음악을 향한 정성만은 모두 같지요.
모두가 평범하게 비범한 경쟁의 장에서 승패를 가르는 요인은 모호하고 미미합니다. 무대 첫 순서에 걸려 긴장감을 떨치기 어려웠거나, 아침잠이 많아 오전 연주에 집중하지 못했거나, 최선을 다했지만 '심사위원의 마음'에 찰나로 들지 못한 경우죠. 물론 임윤찬처럼 압도적 천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만 대개의 경쟁은 이처럼 다소 허술하고 허무한 요소들의 집합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합격과 탈락의 경계를 깨우칠 수 없었습니다. 각각이 모조리 다르게 아름다웠거든요.
이 영화에서 경쟁의 이치를 발견한 사람은 저만은 아니었는데요. 영화를 관람하신 제 어머니는 콩쿠르에 참가한 젊은 예술가들을 보며 각종 경쟁에 놓여버린 한국의 청년들을 떠올렸다고 해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처럼 고원한 꿈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고 싶은 청년들, 혹은 그저 안정된 삶을 살고 싶을 뿐인 청년들이 감내해야 하는 가혹한 경쟁의 이치를, 이 세상의 '가여운 이치'를요.
올해도 한국의 사교육비는 역대 최대를 찍었다고 합니다. 취업 경쟁률은 81 대 1로 높아졌다고 하고요. 취준생이자 대한민국 청년인 저를 슬프게 만드는 건 모진 수치보다도 '누구와' 싸우고 있느냐는 건데요. 꿈을 위해, 생계를 위해, 안온한 내일을 위해 끈덕지게 노력하고 포기하고 다시 일어서는 아주 보통의 사람들, 제 또래의 평범한 동료들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저는 참 슬프고 가엽습니다.
영화가 남긴 몇 기억들 중에서요. 빼어난 연주와 총명한 눈빛보다도 강렬했던 건 콩쿠르에 임하는 마음들인데요. 연주자들은 하나같이 말해요. 이것은 경쟁이 아니라고. 음악을 도구로 싸우기보단 음악이라는 세계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내 음악을 들려주고 다른 이의 음악을 들으려고 이곳에 왔다고요. 승패에 흔들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더라도 나의 것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결의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생존이 꿈이 되어버린 경쟁 사회에서 나의 것을 지키라는 말은 역시 미련한 환상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마땅한 이치도 없는 곳에서 이기고 지는 일을 계속 견뎌야만 한다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저 미련한 소망뿐입니다. 본인을 지키고, 서로를 지켜달라는 것이요. 승자니 패자니 세상은 떠들어대도 우리의 인생은 그따위 시시하고 웃기는 짬뽕이 아니니까요.
당신이 당신만의 연주를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2024.3.17. 사하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