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 <등산은 왜 할까>
안녕하세요, 서른다섯 명의 구독자님. 그리고 우연히 이곳에 찾아오신 분들.
무더위와 함께 돌아온 사하입니다.
등허리에 ‘상온에 두지 마시오’ 표식을 붙이고픈 계절입니다. 모두들 녹아내리지 않고 야무진 형체를 유지하고 계신지요. 여름은 바다와 아이스크림과 뭉게구름의 계절, 그리고 벌레와 배탈과 식중독의 계절인데요. 이것저것 조심하시고 아무쪼록 무탈하셨으면 합니다.
여름은 또 하나, ‘어차피’의 계절이기도 한데요. 음식만큼 몸도 마음도 쉬이 상하는 여름엔 일종의 증후군처럼 모든 행동에 어차피라는 단서가 붙곤 하지요. 아래처럼요.
맛집 갈까? → 됐어, 어차피 다 아는 맛인데….
책 읽을까? → 됐어, 어차피 다 까먹을 텐데….
운동할까? → 됐어, 어차피 얼마 못 갈 텐데….
어차피라는 이름의 포켓몬처럼 어차피, 어차피, 중얼대다 보면 세상만사 다 시시하게만 느껴지지요. 오늘은 이 ‘시시한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려는데요. 적확한 노래가 있어 데려왔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등산은 왜 할까>이고요. 여유가 있다면 먼저 듣고 오셔도 좋습니다.
https://youtu.be/-8DtRly-Cnc?feature=shared
다소 철학적인 곡명이지요. 음률은 퍽 경쾌하고요.
그 산뜻함을 배경으로 둔 슴슴한 목소리는 연거푸 이렇게 묻습니다.
등산은 도대체 왜 하는 걸까?
뭐하러 힘들게 높이 오를까?
어차피 내려올 걸 알면서도
뭐하러 그렇게 높이 오를까?
술은 또 왜 그리들 마시는 걸까?
뭐하러 몸 베려 가면서 노나?
어차피 깨버릴 걸 알면서도
뭐하러 그렇게 취하려 들까?
묻는 건지 비꼬는 건지 알 수 없는 물음표의 나열엔 앞서 말한 ‘어차피’의 마음이 담겨 있는데요. 어차피 내려올 산, 어차피 깰 술에 정성을 쏟는 복작복작 와글와글 인생살이, 몽땅 시시하기 짝이 없다는 태도에 덩달아 수긍하게 되기도 하고 웬 시비냐고 따지고 싶기도 하지요.
그러나 마저 곰곰 듣다 보면 따져 물을 수 없는 묵직한 진심이 울컥 튀어나옵니다.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다시 슬퍼질 바에야
애초에 기쁘지도 않았으면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다시 외로울 바에야
애초에 곁에 아무도 없으면 좋겠어
와락 내지르는 음의 전개 때문일까요. 저는 이 곡의 후렴이 어떤 호소처럼 들리더라고요. 왜 너는 나를 떠났느냐, 왜 우리는 함께 있지 않느냐, 하는 아주 내밀한 호소이기도하고요. 왜 우리네 인생에는 고통이 있느냐, 왜 슬픔과 상실이 있어 우리를 기쁨에서 추방시키느냐는 아주 실존적인 호소이기도하지요.
어차피, 어차피, 하고 말하는 마음의 뒤편에는 조금도 시시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잃어 본 비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문득 무서운 유행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함?)’이라는 단어인데요. 주로 고통을 토로하는 이에게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이 아닌 이상 네가 선택한 인생 알아서 하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때 쓰이죠.
이 단어가 왜 혐오인지, 어떻게 고통을 묵살하는 사회에 기여하는지 분석은 아껴두고요. 제가 주목한 건 자못 불쾌한 유행어에서 풍기는 ‘시시한 태도’였습니다. 등산이나 음주, 독서나 맛집탐방을 넘어 타인의 삶과 생명까지도 시시하게 여기는 마음이요. 그 이면엔 고통에 대한 거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고통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거부할 때, 그 극치에 다다른 마음이 ‘누칼협’과 같은 섬뜩한 단어를 탄생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더위 햇볕처럼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비통, 무참, 부정(不正)을 견디다 보면 그만 세상만물이 시시해져 버리곤 합니다.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무뎌진 사람들을 비난하기란 어렵죠. 하지만 그럭저럭 무뎌진 대로 한도 끝도 없이 시시해진다면, 우리는 비통을 호소할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요? 왜 우리의 세계는 이따위냐고, 슬프고 외롭다고, 우리의 삶은 시시하지 않다고, 때론 묵직하게 때론 산뜻하게 내지르는 연습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고로, 당신이 시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라는 마음이 불쑥 치밀어도 ‘굳이’ 산을 올라 노을을 보고, 그리운 사람들 만나 술을 마시고, 모르는 작가의 책을 펼쳐보고, 작심삼일이라도 운동하면서, 결코 시시하지 않은 시선으로 당신의 생을, 누군가의 생을 지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4.07.07. 사하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