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인 불안의 터널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도 사실 아가미가 있었음을.
연말은 냉정하다.
나는 한 해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여기 저기서 얼른 보내야 한다며 조바심나게 한다. 나만 아쉬울 뿐 결국은 석연찮게 보내주게 되어있다.
심지어 그 한 해 내가 이룬 것이 썩 없다고 느껴진다면,연말을 보내는 사람들과 들뜬 분위기 속에 나만 두고 모든 것이 바뀌는 것 같은 기분을 만든다. 마치 진공 속에 갇힌 기분이 든달까.
무엇보다 20대 중반 이후부턴 순간의 선택이 나의 모습과 환경에 결정적인 영향과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점 때문인지 한 해와 연말의 무게가 더욱 무겁다.
나와 내 친구들만 보아도 그렇다. 몇 달 새에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매일 성실히 일상을 반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것이 맞는지 고민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더라도 이것으로 먹고 살 수는 있는건지,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기도 한다.
분명 하루 하루를 살아내고 있음에도 눈 앞에 명료히 보이는 것은 없고,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숨 막히는 진공을 '그냥' 각자 살아낸다.
<아가미>는 보편적이면서도 불안정한 진공 속에 숨 막히는 20대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꿈을 핑계로 방황하는 승원과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가현. 상반된 두 인물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알 수 없는 사건들을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하고 싶은 것은 재능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순간 속에서는 저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연극 단원으로 생활하고 있는 승원에게도 그렇다. 아버지의 재혼에 적응하지 못하고 성인이 되자마자 뛰쳐나와 극단 생활을 한지 7년. 하고 싶은 것은 정말 연극이 맞는지, 자신이 현실 도피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고민하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길로 극단을 그만두고 자신이 뛰쳐나왔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간 승원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한 채로 몇 일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이복 남매 가현이 찾아온다. 가현은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 공시를 준비하고 있는 공시생이다. 가현은 노량진으로의 독립을 원하고 있었고 홀로 남겨질 자신의 엄마가 걱정돼 승원에게 집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한다.
대수롭지 않게 그녀의 말을 흘려 들었지만, 자꾸 그녀의 말이 머리 속에서 맴도는 승원. 무기력하게만 하루하루를 보내던 승원의 주변에서 가현이 찾아온 이후로 자꾸만 미스테리한 일이 일어난다. 승원은 집에 자신과 가현 외 다른 무언가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류를 느낀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반복되는 의문스런 일들과 주위의 모든 것들이 그를 불안하게 한다.
러닝 타임 전반을 차지하는 스산하고 불안정한 기운이 무색하리만큼, 승원과 가현에게는 영화의 말미까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깊은 호수 속에 던져진 것 만큼이나 막막하고 불안한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속되고야 말 20대의 삶을 꼭 닮아있는 지점이다.
특히 승원은 자신의 마음 속 불안의 매개체를 모두 창고에 가두어두고는 계속해서 그것을 들여다보러 찾아간다. 반복해서 창고를 찾으니 왜인지 그의 불안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지만, 사실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은 '승원이 정확하게 무엇을 찾고 싶은지, 왜 그렇게 불안한 건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평범한 이십 대는 항상 걱정이 많다. 내일에 대한 걱정, 혹은 금전적인 것, 직장, 인간관계 등 사사로운 것들에 대한 거다. 생각보다 우리 인생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영화도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불안은 언제나 실체 없이 존속하는 것들이며, 어쩌면 우리는 그 속에서 착실하게 숨 쉬며 삶을 살아내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영화의 메세지 속에 맹목적인 불안을 살아낼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게 된다.
유독 산만한 2024년의 말미에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각자의 터널이 언제 쯤 끝날지 몰라 불안한 20대들이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맹목적인 불안의 터널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도 사실 아가미가 있었음에 한시름 놓게 될 테니.
* 원문은 문화예술전문언론사 아트인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