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상처를 겹치면

by 최사해

시간이 흘러도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는 흉터로 바뀌어 내 몸과 마음에 남아 있을 뿐이다. 심지어 어떤 흉터는 바라보고 되뇌일 때마다 고통스러운 마음과 감정이 차오르기도 하는데 특히나 비극적인 점은, 나의 상처는 나만이 이겨낼 수 있는 것일 뿐. 그 누구의 위로도 내 상처의 핵심까지는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을 체감하고 난 후부터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상처에 결코 다가설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상처 언저리에서 상처를 '함께' 회복하려는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 한 일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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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답은 이 영화, <폴아웃>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참담한 사고를 겪으며 급격히 가까워진 두 소녀가 있다. 같은 학교 친구였던 미아(매디 지글러)와 베이다(제나 오르테가). 그들은 서로의 SNS를 통해 서로의 근황을 보고, 마주치면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 가깝고도 먼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학교에서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참사가 터진다. 같은 학교 동급생이 총기를 사용해 친구들을 살해한 사건. 그 시각 우연히 한 화장실에 서 있었던 그들은 화장실 한 칸에 숨어들어, 시시각각 날아드는 총성과 그 총격이 그들이 향하지 않을까하는 공포감을 함께 버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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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다와 미아는 운 좋게 그 사건으로부터 살아남았지만, 이후 오한과 불면이 그녀들을 괴롭힌다. 베이다는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면서도, 혼자 SNS를 보면서도, 혼자 책을 읽으면서도 온몸을 떤다. 그녀를 걱정한 가족들이 그녀를 상담 센터에 보내보지만, 베이다는 그 곳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미아의 가족들은 항상 출장 때문에 집을 비우기 바쁘고, 매일 밤의 어둠을 혼자 보내며 잠 못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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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는 그 상처를 드러내는 모든 행위가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베이다의 가족은 그녀가 하루 빨리 나아져 복학하기를 원하고, 그래서 꾸역꾸역 나가 앉아있는 학교에서는 총기 난사에 대처하는 요령을 가르치기 바쁘다. 그것이 벅차던 그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미아와 보내는 시간 뿐이다. 혼자서는 두렵고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 속, 미아의 집에 방문해 술을 마시거나, 사우나 실에 들어가 함께 보내는 시간에서는 누구도 그들에게 얼른 나아져라 떠밀지 않으니까.


사실 이 영화는 미아와 베이다가 서로를 통해 얻어내는 치유를 담아내기도 하지만, 그 둘의 관계를 넘어 참사를 겪은 모든 사람들과 가족들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사를 겪은 개개인의 상처와 그리고 그것을 두고 개인과 가족이 불화하고, 그럼에도 그 과정과 자신의 감정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베이다의 서사를 통해 그녀의 상처에 새살이 돋기 때문이다.


미아와 베이다와 함께 같은 화장실에 숨어 있던 인물이자, 총기 난사 사건으로 동생을 잃은 퀸튼. 그리고 참사 후, 자신의 상처를 사회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애쓰는 닉까지. 퀸튼은 동생을 떠나보낸 후, 동생을 기억하고 또 떠나보내기 위한 시간을 보낸다. 동생이 떠났음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동생은 그와 함께 있음을 상기하는 퀸튼을 통해 상처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회복하는 개인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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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반면 닉은 '분노'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사람이다. 총기 난사 사건을 방임하는 안일한 정부와 국가에 분노하며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자신은 이 상처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베이다는 나아지기 위해 아무런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여 답답하다. 더욱이 미아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베이다에게는 유해해보인다고 생각한 닉은 베이다에게 '너는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있다'며 그녀를 다그친다. 하지만, 이후 닉에 대해 퀸튼이 던지는 말을 통해 알 수 있 듯 결국은 닉도 그의 방식으로 안정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 뿐이다.


상처는 당사자의 몫이지만, 사회적 참사는 당사자를 넘어 가족과 사회에까지 상흔을 남긴다. 그리고 베이다가 자신의 상처를 딛고 설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역시 그녀의 가족이다. 자신의 방에 틀어 박혀 있거나 미아를 만나러 집을 비운 베이다를 바라보는 동생은, 언니가 죽을 뻔 했다는 사실이 자신의 탓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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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채 간직하던 동생은 언니의 옆에 누워 잘 수 있게 된 어느 날 밤, 그 마음을 베이다에게 털어 놓는다. 그리고 베이다는 그런 동생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게 되고 이 참사가 자신에게만 상처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한다. 극 중 처음으로 뱉어지는 그녀의 상처와 동생의 상흔은 그렇게 함께 겹쳐지며 서로를 보듬는다. 그리고 영화는 겹쳐진 상처와 같은 모양새인 '함께 누운 모습'을 비추며 이를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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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감정이 폭발해, 1차적으로 분출되는 순간도 자신을 독촉하기만 한다고 생각하던 아빠와 함께다. 아빠와 함께 오른 언덕 위에서 베이다는 아빠와 소리를 지르며 처음 그녀의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그 폭발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직시할 힘을 얻는다.


과정 자체로 의미 있는 것들이 있다. 자신의 상처는 결국 자신만이 가눌 수 있지만, 그 과정을 혼자서만 견뎌야 한다면 상처는 흉터로조차 변화할 수 없겠지. 우리가 누군가의 상처 언저리까지만 도다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우리가 서 있는 언저리로 데리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상처 위에 야만적으로 세워지고 또 서로 상처를 주고 받지만, <폴아웃>에서 그들의 상처는 다양한 방식으로 겹쳐진다. 같이 눕고, 서로를 껴안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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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겹쳐내며 제 각기 고립된 핵심에서 걸어나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 때가 있으면, 누군가와 함께 눕자. 혹은 누군가를 안아보자.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함께 공간의 무거움을 견뎌내보자. 우리에게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그렇게 겹쳐낼 때, 그 때가 우리를 조금은 더 살게 할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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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은 문화예술전문언론사 아트인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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