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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ul 24. 2021

시간을 달리는 고양이


우리 집 고양이 모카는 열여섯 살이다. 길고양이 출신 코숏인데, 3개월쯤 입양했을 때는 나름 미묘라고 생각했었다. 어떤 고양이보다 도도하고 깔끔했던 그녀였지만, 도저히 씻길 수 없는 성격 탓에 지금은 냄새가 좀 나는(?) 할머니 고양이가 되었다.


3개월 무렵의 그녀


매일이 뜨겁다. 더워에 숨이 막힌다. 방학을 한 아이들과 고양이에 강아지(거북이 2마리는 빼더라도)까지 여럿이 집안에서 지내다 보니 바람도 불지 않는 한낮이면 복잡한 냄새가 스멀스멀 퍼져나간다. 인간과 동물, 각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체취는 아무리 초를 켜고 방향제를 뿌려도 감추기 어렵다. 사람이야 샤워라도 하고, 치노는 목욕이라도 시킬 수 있지만, 모카에게서 나는 냄새는 답이 없다. 다른 계절에는 무시할 수준인데 여름이어서 민감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예전에 모카는 고양이답게 자신을 깔끔하게 유지했었다. 그래서 아무리 목욕을 시킬 수 없을 만큼 까칠한 고양이라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씻지 않아도 늘 깨끗할 것 같은 고고한 이미지를 지녔었다. 마치 아름다운 여자는 화장실도 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카의 이미지도 변하고 있다. 자신을 돌보기에 지쳐버린 건지,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람, 포기해 버린 건지, 이젠 조금은 지저분한 고양이 할머니가 되었다.


시간은 고양이에게도 공평하게 흘러간다.


게다가 이런 더위에서야, 고양이 세수라도 하는지 의문이다.



모카를 씻기려는 노력을 안 해본건 아니다. 하지만 모카는 절대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다. 욕실에서 물고 할퀴고 피 튀기는 혈투를 벌이고서야 간신히 샤워기로 털에 물만 묻힐 수 있었다. 털도 많이 빠져서, 이발을 하려고 동물병원에 데려갔다가 의사 선생님도 포기하고 돌려보낼 정도였다.


그런 사정이다 보니, 아예 목욕은 포기했다. 고양이는 스스로 관리할 수 있다는 걸 믿고, 털만 빗어주는 정도였다. 게다가 16년을 함께 살면서 어디가 아프거나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다(밤마다 우는 건 이젠 포기했지만).




요즘 모카를 보면, 더위 때문인지 길게 늘어져 있다. 높은 곳으로 점프하는 실력도 형편 없어졌고, 종일 잠만 잔다. 물론 사료도 잘 먹고, 물도 잘 먹고, 배변도 순조로운 걸 보면, 아픈 건 아니고 단순히 노화의 문제인 것 같다. 정작 본인은 모든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걸 지켜보는 나는 좀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에 비해 1살 철부지 강아지 치노는 매일매일이 룰루랄라다. 할머니 고양이를 따라다니며 놀아달라고 보채 보지만, 하악질만 당한다. 할머니에게는 쉼이 필요하다.


둘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한 인간의 삶도 이와 비슷하겠지.
태어나 연약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나면, 화려한 청춘의 시간이 다가오고,
그 화려함이 사라질 때쯤에는 조용히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난날을 돌아본다.



16살의 그녀


모카도 지금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나.


2미터쯤은 거뜬히 뛰어오르고, 밤이면 동네 마실을 다니며 밤거리를 헤매고(1층에 살던 시절, 어둠이 내리면 어딘가로 나갔다가 해가 뜨면 들어오고는 했었다), 4마리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이 입양 가는 걸 지켜보고, 우리 집에 오간 수많은 동물들과 만나고 헤어지던 시간들.

이제 모카는 꿈속에서 그런 날들을 되돌려보고 있을까.


더 많이 꿈꾸기 위해, 더 많이 자는 걸까.


모카가 이 여름을 잘 보내기를 바란다. 아무리 몸에서 약간의(?) 쉰내가 날지는 몰라도, 그런 것쯤은 창문 열고 선풍기 한번 돌리면 사라질 문제일 뿐이니까.


우리 곁을 떠나는 날까지, 목욕 같은 건 안 해도 좋으니, 자신의 도도함과 자존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


나 역시 그럴 것이다.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지킬 것이다. 그것이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시그니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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