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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un 18. 2021

내 생일인데 나는 왜 케이크를 못 먹지?

강아지 돌잔치에 아이스크림 케이크라니

"엄마, 케이크는 무조건 아이스크림 케이크야!"


"치노는 먹지도 못하는데 웬 케이크? 케이크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아니야, 내 돈이니까 내가 고를 거야."



치노의 1살 생일. 지난 명절에 세배하고 받아둔 용돈으로 딸은 치노의 생일 케이크를 사겠다고 했다. 어차피 이미 내 통장에 들어온 돈이었지만(아이는 그냥 엄마가 보관만 하는 거라지만), 알겠다고 했다.

강아지 생일파티에 케이크를 사주겠다는 마음이 예뻤다. 물론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 너희 마음을 엄마는 다 알고 있지만~


지금껏 나는 한 번도 태어난 날을 명확하게 아는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처음 강아지는 시골에서 데려왔고, 그다음 강아지는 길에서 샀고, 그다음은 회사 동료가 주었다. 16년 전 입양한 고양이도 길냥이였다. 그러니 나를 스쳐간 수많은 동물들이 태어난 날을 알 수도, 알아야 한다고도 생각지 못했다. 20년 전의 일이라 그때도 애완동물 생일파티를 하는 집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반려동물을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어떤 종을 키워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같이 사는 고양이보다 작은 종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소형견 중 치와와와 토이푸들, 포메라니안이 최종 후보로 올랐다. 마지막까지 포메라니안와 치와와를 고민했었다. 털이 봉슬봉슬하고 인형 같은 포메라니안에 마음이 끌렸지만, 성격이 앙칼지다는(?) 얘기를 듣고 고민이 되었다. 할머니 고양이와 문제가 생기면 안 됐다.


그러던 중 털이 긴 장모치와와를 알게 되었다. 특히 짙은 갈색과 옅은 갈색이 섞인 긴 털을 날리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집에서 가까운 샵에 연락을 해봤지만 장모치와와 수컷은 찾기 힘들었다.

며칠이 지나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의 가까운 샵에 우리가 사진으로 보았던 바로 그 장모치와와 수컷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해 9월이었다.


비 오는 거리를 우산을 받쳐 들고 네 식구가 너무나 신이 나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마치 '싱잉 인 더 레인~~' 음악이 깔리며 사랑에 빠진 영화 속 주인공이 빗속을 뛰어가는 기분이랄까.


치노를 처음 만났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작은 유리창에 갇힌 녀석이 꼬물꼬물 를 향해 발을 내밀었다.


"나를 데려가세요. 나의 가족이 돼주세요."


치노의 눈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이 아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내 아이들도 아직 어린데, 고양이와 거북이는? 또 다른 생명을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치노를 품에 안았을 때, '부담감'이라는 감정이 물밀듯 밀려왔다. 이대로 이 애는 안 되겠다고 말하고 도망쳐버릴까.


아니, 아니다.

그냥 좋았다. 얼마나 망설이고 고민했던 순간이었는데. 그냥 예뻤다.

출생일자가 정확히 박힌 서류를 가진 나의 첫 강아지.


게다가 치노를 바라보는 딸들의 눈엔 이미 사랑이 그득하다.






물론 알고 있다.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애견 교배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그렇게 태어나서 주인을 만나고도 버려지는 반려동물이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그때 우리에게 다른 선택을 찾기는 어려웠다. 만약 우리가 아니었다면 치노는 몇 달을 더 그곳에 머문 후, 분양이 되지 않으면 어디로든 보내졌을 것이다(그것까지는 정말 알고 싶지 않다). 덩치도 커지고 개월 수도 많아져 헐값에 누군가에게 넘겨지겠지.


치노는 예민한 강아지다. 아마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태어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솔직히 처음엔 키우는 게 쉽지 않았다. 잘 짖고, 고양이와 매일 싸우고(지금 생각하면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싸울 놈들은 싸우는 것 같다), 산책을 나가도 다른 개나 사람을 향해 짖어대고, 딸들을 물어 상처를 내는 치노를 보며 후회와 슬픔을 느끼기도 했었다.


왜 이런 강아지를 데려왔을까, 왜 우리 치노는 다른 개처럼 순하고 얌전하지 않을까.


쌍둥이를 처음 키울 때 그랬다. 아이들은 너무 예민했다. 조리원을 나오는 날, 선생님이 "집에 가면 고생 좀 할 거예요."라고 한 말이 시작이었다. 아이들은 낮밤이 바뀌었고, 밤새 울었고, 안아서 재우지 않으면 잠들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한 명씩 안고 밤을 새웠다.

"도대체 왜 우는 거니?"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런 아이들이 이제 10살이 되었다. 여전히 민감한 부분이 있지만, 나는 아이들의 예민함에 적응해 가고 있다. 입도 짧고, 겁도 많고, 원하는 것도 많은 아이들.

반면에 책도 잘 읽고, 그림도 잘 그리고, 피아노도 잘 치고, 글도 잘 쓰는 아이들. 예민함과 민감함은 배려와 신중함이 될 수 있고, 예술적 재능으로 발현되고 있다.




베스킨 XX 에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샀다. 물론 딸들이 예쁘다고 고른 신상 케이크였다. 아마 치노는 이게 뭔지도 모르겠지.

아이들이 최근에 관심을 가진 카림바로 생일 축하송을 연주하기로 했다.

길다란 초 한 개를 켜고(치노는 무서워서 고개를 돌렸지만), 노래를 불렀다. 치노는 다른 누나가 선물로 사준 비싼(?) 애견껌을 대신 입에 물었다.


어쩌면 치노의 삶은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딸들이 이십 대를 지나고 있을 때쯤, 정말 장수를 해도 삼십 대가 되면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러니 돌잔치는 더 화려했어도 됐었다. 아이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처럼 말이다. 


이별이 두려워서 지금 이 행복을 포기하지는 말자.

우리 가족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언제나 치노도 함께일 것이다.



예민하고 겁이 많은 치노를 보며 생각한다.


"넌 아무래도 우리 가족이 될 운명이었나 봐. 그러니 네가 창밖으로 외치는 그 길고 긴 하울링을 멋지게 표현할 방법이 뭘까 고민해 봐야겠어.
우리 브래멘 음악대를 만들어 볼까? 누나들은 피아노와 카림바를, 아빠는 기타를, 너는 고개를 높이 쳐들고 아우~~~ 하는 거지.
그럼 엄마는 노래를 불러볼까?
악기는 영 재주가 없으니 말이야."



 


아니, 치노야. 그냥 아프지 말고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어줘.

그거면 돼. 넌 그러려고 우리에게 온 거니까. 태어나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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