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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May 18. 2021

사랑했지만 미안했던 나의 강아지들에게

치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래전에 함께 했었던 강아지(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나에겐 강아지인)들이 떠오른다. 그 기억을 하나씩 들추다 보면 내 삶의 어떤 마디마디가 손에 잡히는 것만 같다.

돌아보니 사랑하는지도 모르게 사랑했던 존재들이었고, 그래서 미안함만 남은 존재들이기도 하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강아지는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골에 사는 사촌 언니네 집에 놀러 갔다가 동네 바둑이가 낳은 강아지를 얻어왔었다. 당시 집안 사정이 좋지 않고, 남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어 반려견을 키우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들었는데, 다행히 주인집과 떨어져 있고 바깥 공간이 조금 있어 어렵게 엄마를 설득했던 것 같다. 아니 설득이 아니라 그냥 무작정 집으로 데려왔던 것같다.

이름이 복실이였을까, 너무 짧게 내 곁에 머물다 떠난 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쩌면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복실이는 어느 여름, 학교에 다녀오고 나니 사라져 버렸다.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지만, 엄마가 누군가에게 팔았던 것이다. 너무 아픈 기억이라 자세히 떠올리고 싶지가 않다. 그때의 원망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 보면 내가 복실이를 꽤 좋아했던 게 분명한데, 이제는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으로만 남았다.




나의 두 번째 강아지는 대학생 시절에 내게 왔다. 친구와 이대 앞을 지나던 중, 길거리에서 할머니가 종이상자에 담은 강아지들을 팔고 있었다. 맞다. 길거리에서 강아지를 팔고 있었다. 초등학교 앞에서 상자에 담긴 병아리를 본 적은 있어도, 강아지는 처음이었다. 물론 처음엔 강아지를 살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상자에 담긴 강아지들이 너무 귀여워서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할머니, 이 강아지 얼마예요?"

유난히도 눈에 밟히는 검정 강아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학생이니까 싸게 줄게. 3만 원!"

아, 학생 처지에 3만 원이 싸지는 않았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옆구리를 찔렀다.

"너무 이쁘다. 값 아껴서 사~"


나는 결국 상자에 담긴 강아지를 안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녀석의 이름은 까미가 되었다. 까만 털에 갈색이 섞인, 얼핏 도베르만과 비슷하지만 견종이나 성격은 토종견에 순딩이었다.


까미는 그렇게 나와 2년 정도를 함께 지낸 후 사라졌다. 현관문을 열어둔 사이 가출을 해버린 것이었다. 까미를 찾기 위해 온 동네에 전단지를 붙이고 골목골목 휘젓고 다녔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당시 동네 근처로 자전거 뒤에 철창에 담긴 강아지를 싣고 다니던 아저씨(일명 개장수)가 지나갔다는 목격담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나의 까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데, 그런 개장수가 동네(서울 한복판)를 돌아다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개의 식용 문제는 아직도 논쟁의 중심이지만, 어서 빨리 현명한 판단이 이뤄지고 법제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까미도 떠나고 대학을 졸업한 후, 회사에 취업했다. 그곳에서 만난 동료가 어느 날 자기 집에 강아지가 있는데 키워줄 사람이 없다며 한번 보러 오라고 했다. 나는 기대 없이 동료를 따라갔다 껌둥이를 만났다. 3개월쯤 됐을까. 떠난 까미와 비슷한 검은색에 갈색이 섞인 강아지였다. 첫눈에 반한 나는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껌둥이는 훈련이 잘 되지 않았었다. 특히 배변훈련이 어려웠는데, 아무 데나 오줌을 싸서 혼이 많이 났었다. 마룻바닥에 하도 오줌을 싸서 마루가 일어나기도 하고, 침대 매트리스에도 오줌을 싸서 세탁을 하느라 골치가 아팠다.


그때, 난 솔직히 어떻게 하면 강아지를 잘 키울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한마디로 무지했었다. 그냥 귀여우니 데려왔고, 같이 살았지만 껌둥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았다. 이십 대의 나에겐 앞으로의 미래와 결혼이 더 중요했었다. 그 사이 흰둥이라는 마르티스가 업둥이(우리 집 문 앞에 앉아 있었다)로 들어왔다. 다행히 껌둥이는 흰둥이와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지냈다. 차라리 덜 외로울 것 같아 다행이다 생각했었다.


나는 껌둥이를 친정에 남겨둔 채 결혼을 하고 외국으로 떠났다. 내가 외국에서 지내는 사이, 껌둥이는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솔직히 친정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껌둥이 역시 그리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외국에서 돌아온 후에는 나의 살림, 나의 집이 생겼고, 그동안 강아지에게 지녔던 마음은 고양이(모카)에게로 넘어갔다. 가끔 친정에 들르면 나를 잊지 않은 껌둥이가 나를 반겼다. 그 사이 엄마는 껌둥이와 정이 많이 들었고, 껌둥이는 이제 엄마의 강아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껌둥이를 두고 집으로 돌아와 나의 삶을 살았다. 아이를 낳았고, 엄마가 되었다.

껌둥이는 14년을 살고 우리 곁을 떠났다. 평생 아프지도 않고 병원도 가본 적 없던 껌둥이는 자궁에 종양이 생겨 입원한 지 며칠 만에 눈을 감았다. 그땐 아이들이 너무 어려 가 볼 수가 없었다. 엄마는 껌둥이를 화장했고, 나무 밑에 묻었다. 소식을 듣고 소리없이 울었다. 가슴이 아팠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겐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아이들을 앞에 두고 쉽게 다른 존재의 죽음에 흔들릴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던 것 같다. 슬픔을 꾹꾹 누르는 법만 배우고 살아왔었다.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이제야, 뒤늦은 슬픔이 몰려온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껌둥이를 그리워하는 글을 쓰고 있다.

쓰고 있으니 보고 싶다.


혼내고 화내서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를 안고 자던 밤이 그립다고 말하고 싶다.

산책도 자주 해주지 못하고 맛있는 간식도 사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매일 늦게 들어가고 너를 두고 떠나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미안하다고, 아플 때 가보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치노를 키우고서야, 나는 내가 지난날 얼마나 못난 사람이었는지 깨닫는다. 아니 깨달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치노에게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 나는 어른이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사라진 개에 대해 엄마나 개장수의 핑계를 댈 수도 없고, 대지도 않을 것이다.


나중에 긴 시간이 흐르고 난 후, 치노가 떠나는 날이 왔을 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미안함보다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다시 만날 때 환하게 웃으며 만나자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 떠나간 복실이와 까미와 껌둥이도 다 같이 만나자고.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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