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lla Aug 18. 2022

당신에게 그리운 곳은 어디인가요?


그리운 바다 성산포

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 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 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배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역덕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노래를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 종일 바다를 비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놓아주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 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 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 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제주에 왔습니다.

얼마전 끝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가슴이 시리거나

삶이 너무 지치거나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제주에 왔습니다.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데도

어느 이국의 섬처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낯설고도 부러웠습니다.


저 바다가

저 하늘이

저 섬이,


그 고립이

그 외로움이

그 홀로가


나는 참 무서운데

용감한 사람들이 사는 섬이 부러웠습니다.


오래전,

사랑을 잃고 제주에 홀로 와

오래 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혼자라는 이유만으로

잔뜩 겁을 먹고

걸음 걸음이 도망처럼 무겁고도 가벼웠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지키는 하나의 시가

바로 '그리운 바다 성산포'였습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면

늘 제주를 찾게 됩니다.


그곳에서 며칠만 쉬어갔으면,

며칠만 그저 멍해봤으면.



시인은 아주 오래전에 이미 제주에 한 달을 살아보자 했습니다.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한 달이 아니어도 좋으니

그리움이 없어지지 않아도 좋으니

제주에 오니 숨이 트입니다.



무엇을 그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떠난 사람인지

이루지 못할 꿈인지

곁에 있어도 그리운 누구인지.


어차피 평생을 그리워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겠지요.

 

삼백육실오일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으로

지금껏

제가 본 것은 무엇일까요.


그나마 다행인건

이렇게라도 그리워할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무하게 무너진 어느 날,

훌쩍 찾아와

소주 한 잔에 해삼 한 조각으로

그리움을 실컷 들이켜고

다시 숨 쉴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그리운 곳이 있겠지요...


그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이 상상하는 세상은 어떤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