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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온전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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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May 07. 2019

가족의 한 끼

죄책감 없이 외식을 하러 간다


솔직히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주방에 머물렀고, 즐겁게 장을 본 후 야심 차게 무언가를 만들어 먹은 기억도 많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결혼 16년차 주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다. 전속 요리사가 상주하는 재벌 집 따님이 아닌 이상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요리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이제 나는 아무 죄책감 없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솔직히 요리는 좀 못하지만 좋아는 해요, 라는 애매한 대답으로 질문의 핵심을 살짝 빠져나가기도 했다. 여자라면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냉장고에는 항상 정리해둔 제철 식재료들이 있고, 누군가 원하면 그 재료들을 꺼내 ‘뚝딱’ 멋진 한 끼의 식사 내지는 아이들을 위한 영양 만점 간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할 것 같은 압박. 하지만 내겐 그 일이 마라톤을 완주하거나 지리산을 종주하는 일보다 더 어렵다(두 가지 다 해보았고, 그 후 내린 결론이다).


눈만 돌리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요리 프로와 다양한 먹방을 볼 때마다 나 역시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에 시달리고는 했다. 특히 아이들 이유식을 만들던 시절에는 다양한 책을 보고 유기농 재료만으로 2년 넘게 최선을 다해 만들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일이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다. 누군가 ‘요리책을 읽을래, 요리를 할래?’ 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요리책을 보겠다고 하겠다. 마치 ‘애 볼래, 밭일 할래?’ 하면 밭일을 하겠다던 옛날 여인들의 마음처럼 말이다.


물론 아이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즐겁게 먹어주면 그나마 내가 소비한 시간이 보상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한 숟가락은커녕 죽이 담긴 그릇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을 때는 더없이 허탈한 기분이었다. 식탁 너머 앉아 있는 쌍둥이는 그야말로 온몸으로 예민함을 표출하는 타입이었다. 누군가는 먹여야 하고 누군가는 먹기 싫다 하는 식탁 위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이젠 요리와 육아가 한 덩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좋을 땐 한없이 좋지만, 싫을 땐 정말 나 자신을 미치게 만드는 그 무엇. 

결론적으로,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야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도 왜 이제야, 그걸 인정하게 된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래전 일들이 떠오른다.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 엄마는 일하느라 늘 바빴다. 얼마나 바빴냐 하면 내 도시락을 싸줄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하지 않았고, 점심과 저녁-야간자율학습 때문에- 2개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6년간 나는 내 도시락을 쌌는데, 그게 정말이지 너무너무 싫었다. 다른 친구들은 점심시간이면 오늘은 엄마가 무슨 반찬을 싸주셨을까,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열었지만, 엄마가 없는 아이도 아닌 나는 내가 싼 뻔한 도시락 뚜껑을 여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싫었다. 


물론 당시 우리 집이 도시락도 못 쌀 만큼 가난했다거나 엄마가 게을러서 ‘네 도시락은 네가’라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엄마는 일하느라 바쁘고 힘들고 피곤했고, 엄마가 보기에 나는 한가했거나 아니면 요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내가 고등학교 때 끓인 콩나물국이 너무 맛있다며 가족 모두가 즐겨 주문하던 기억이 난다. 그 국물의 비법이 풍부한 MSG의 양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을까.     


그로부터 20년 넘는 시간이 지났다. 결혼을 하고 요리라는 것을 많이도 했다. 신혼일 때도 있었고, 직장일로 바쁠 때도 있었고, 아이 둘을 들쳐 안고 불 앞에 서 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식당에서 누군가가 해주는 음식이 더 맛있을 때도 있었고,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이 많은 세상에서 왜 꼭 힘들게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간을 보고, 그나마 그렇게 애썼는데도 맛있게 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며, 서로 속으로 이 돈이면 나가 먹을걸, 이라는 후회까지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속 편하게, 우리 외식하자, 하면 될 것을 말이다. 


아마도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런 말을 꺼내기가 더 껄끄러워진 것 같다. 가족이라면 왠지, 엄마는 열심히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어 가족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하고, 아빠와 아이들은 자기 앞에 놓인 음식이 무엇이건 맛있게 먹어야만 하는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둘러앉아 음식을 먹는 사이가 '식구'는 맞다. 하지만 그 장소가 꼭 집안 식탁, 꼭 엄마가 직접 만든 음식이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지 않을까.      





우리는 네 식구다. 남편과 아이 둘과 함께 외식을 나가면 우리 넷은 둘러앉아 맛있게 음식을 먹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식구이며, 외식에서 돌아오는 길 나란히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물고 학교생활과 친구 얘기, 회사 얘기를 나눈다. ‘가족’이란 단어에 어마어마한 의미나 형이상학적 기대를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그저 맛있는 한 끼를 나누고(요리를 좋아하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면 집에서, 아니라면 밖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소화에도 좋은 산책을 하는 사이,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묵묵히 밥만 먹고 즐거운 마음 따윈 없이 도망치고 싶은 식사자리는 당연히 빼고 말이다.  

   

이번 연휴, 우리는 여수로 떠난다. 그곳에서 남도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가족의 추억을 하나 더 추가해보려 한다. 물론 다음 날 아침 해장용 라면은 내 손으로 직접 끓일 예정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밥과 김도 챙겨두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며 다크포스를 뿜어대는 엄마의 등을 보여주는 대신 그 시간을 웃으며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면, 나는 죄책감 없이 그편을 택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기에도,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며, 지금 이 순간 역시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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