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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May 07. 2019

숲은 영원히 살아있다.

찰나를 사는 인간의 짧은 단상

     

금요일 밤, 내륙 깊숙이 자리한 월악산 국립공원 캠핑장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주변에는 하늘에 닿을 만큼 키가 자란 소나무들이 서 있고, 그 나무들 사이로 몇 동의 텐트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이틀 밤을 지낼 텐트 옆으론 계곡이 흐르고, 밤새 물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 숲은 내가 모를 수백 년의 세월을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더 긴 세월을 그렇게 생명을 품고 자라날 것이다. 그 시간을, 유한한 생명에 갇힌 나는 감히 상상하기도 버겁다. 


맥주 한 캔을 들고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진다.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세상 그 어떤 악인이라도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숲에 와서야 느낄 수 있는 작은 인간의 넓은 이해심.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고, 하얀 연기가 허공으로 사라진다. 알 수 없는 새의 울음소리와 작은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도 들려온다. 


나는 잠시 고개를 들어 나무가 가리지 않은 먼 하늘을 바라본다. 검은 하늘 속에 희고 둥근 것이 밝게 빛나고 있다. 보름달이다. 밝게 빛나는 그 크고 둥근 별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를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수억 년을 버텨온 이 별의 어느 작은 숲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저 먼 우주에서 바라본 나란 존재는 과연 얼마나 작고 미미할 것인가. 그렇게 달을 보며 나는 어떤 환희를 느끼는 동시에 무한한 겸손을 깨닫는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이 광대한 숲과 자연,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작은 티끌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입장일 뿐, 우리에게 가족이나 친구, 반려동물 같은 개별적 존재의 ‘죽음’은 분명한 슬픔과 고통, 아픔, 그리움, 후회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인간은 모두 어떤 존재의 죽음에 깊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마치 이곳의 모든 생명체, 하다못해 계곡에서 이제 막 부화하기 시작한 작고 여린 올챙이에게까지 연결된 거대한 숲의 생명력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주변의 어떤 생명체는 죽거나 태어나고 있을 것이다.     


숲이 어둡고 조용해지는 순간, 나는 어떤 공포를 느꼈다. 빛이 비치지 않는 저 먼 깊은 숲은 그저 검게 보일 뿐이다. 마치 영원히 경험해보지 못할 ‘죽음’과도 같은 낯설고도 두려운 어둠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본다. 다행히 다른 텐트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숨이 나온다. 그리고 내 옆 가장 가까이에서 웃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본다. 다행이다. 내 마지막 순간, 의심 없이 함께 있어 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어둠이 사라지는 아침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숲은 푸른 빛과 신선한 공기로 삶을 노래하게 한다. 밝게 빛나는 캠핑장 주변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며칠 아름답게 빛나던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져 내린다. 살아있음으로 아름다워지는 하루를 보내며, 이 봄이 영원하기를 바라보지만, 우리 모두에게 시간은 영원하지 않음을 저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모든 생명을 지닌 것은 죽음이라는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마치 바람에 날려 나뒹굴다 어느 한구석 동그랗게 쌓인 벚꽃잎들의 무덤처럼 말이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벚꽃이 떨어지듯 미련 없이 훨훨 날아가고 싶다. 봄날의 한때를 그 누구보다 아름답게 빛났으므로, 그 아름다움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소중한 추억을 주었으므로, 벚꽃처럼 그렇게 미련 없이 눈 감고 싶다. 그것은 어쩌면 영원한 소멸이 아닌 다음 봄을 위한 날갯짓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날 밤, 텐트에 누워 끊임없이 들려오는 계곡물 소리를 들었다. 저 물처럼 우리의 삶도 계속되고 있다. 저 물은 계속 흘러가겠지만, 우리에겐 언젠가 반드시 ‘마지막’이 올 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계곡물 역시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공기 중으로 증발해 사라진 듯 보인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나무를 키우고, 구름을 만들고, 다시 비가 되어 세상으로 내려와 흐른다. 


나 역시 그러고 싶다. 몸은 자연으로 돌아가겠지만, 나의 영혼만은 누군가에게 남아 그 사람의 삶에 힘이 되기를 바란다. 다음 봄을 기다리는 벚꽃처럼, 그렇게 다시 피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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