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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Sep 22. 2019

별, 돌아갈 나의 집

라라랜드에서 바라본 화성을 그리며

어젯밤 무심히 열어놓은 창문으로 새벽녘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찬 기운에 놀라 잠에서 깨 이제 가을이구나, 깨닫는다. 그러다 조금 전까지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데 생각하며 다시 꿈을 향해 눈을 감는다.


그곳은 어두운 곳이다. 의자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는 내 모습이 보인다.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다. 하나의 별이 눈에 들어온다. 화성이다. 물이 존재하는 유일한 별. 나는 그 별을 흐르는 한줄기 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런 생각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떠오른다.     

 

얼마 전 미국 LA에 위치한 그리피스 천문대에 다녀왔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져 LA의 야경을 배경으로 춤을 추던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꼭 영화 때문이 아니어도, 나에게는 요즘 들어 생긴 별에 대한 관심 때문에라도 일정에서 뺄 수 없는 곳이었다.

기대에 부풀어 도착한 그곳은 약간은 황량한 사막 같은 산 위에 어울리지 않게 솟아 있었다. 밤이 되어도 주변 불빛의 영향을 받지 않고 별을 관측하기 좋은 환경을 찾기 위해, 조금은 외진 곳에 천문대를 지었을 것이다. 저 멀리로는 화려함의 상징인 할리우드 HOLLYWOOD 사인이 보이지만, 밤이 오면 그곳은 조용히 별을 지켜보는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다.      


별에 관한 일종의 다큐멘터리를 보기 위해 돔형으로 꾸며진 천체 모양 극장에 들어선 순간, 나는 온몸으로 일종의 전율을 느꼈다. 어두운 자리에 앉아 상영을 기다리는 동안, 나도 모를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가슴속 어떤 덩어리가 불쑥 눈물이 되어 흘러나오는 듯했다. 이런 감정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흐르는 줄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어둠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과 남편에게서 내 눈물을 가려주었다.


영상이 시작되었다. 마법사처럼 등장한 해설사가 하늘의 별들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많았지만, 몇 개 단어들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물이 모든 것을 살게 한다고, 별도 지구도 생명도. 지구를 둘러싼 바다와 강, 계곡의 물들, 그리고 물이 존재한 흔적이 남은 별, 화성. 화성의 영상을 보는 순간 잠시 멈췄던 눈물이, 어릴 때 헤어진 그리운 사람을 본 것처럼 큰 슬픔으로 터져 나왔다. 만나고 싶어도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미 멀리 떠나간 그리운 사람들.      

별의 모습과 눈물 속에서 죽음을 생각한다. 우린 모두 어느 별에선가 서로를 그리워하다, 지금 이 순간 지구에서 함께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각자의 별,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이곳, 이 순간, 서로의 손을 잡고 연인, 부부, 가족, 친구가 되어 만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마지막을 맞는 그 순간, 죽음이 우리에게 오는 순간, 우리는 다시 고향별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지옥, 환생이나 굴레, 업보 따위가 아닌, 처음 떠나왔던 그 별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더는 어둠이 두렵지 않다. 별은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고, 이제 어둠은 무서운 무언가를 숨긴 알 수 없는 공포가 아닌 빛을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이 꺼지는 순간, 검은 하늘 위로 하나둘 별이 떠오르던 장면은 아름답다고만 하기에는 부족한, 원시적인 그리움이 담겨있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 사람들은 밤이 오면 쏟아지는 별을 보며 노래했다. 하지만, 이제는 별을 보기가 쉽지 않다. 도시의 빛들이 너무 밝기 때문이다. 결국, 어둠만이 빛을 드러낼 수 있을지 모른다.     




<라라랜드>에서 남자 주인공은 배우가 되기 위해 할리우드에 온 연인을 돕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온갖 노력에도 실패만 반복하던 여자 주인공은 결국 꿈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남자 주인공은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 마지막이라며 오디션장으로 그녀를 이끈다. 마침내 그녀는 탑 배우의 꿈을 이루지만, 그에게서 멀어져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긴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꿈이었던 재즈바를 열고 원하던 피아노를 치며 행복하게 지내는 듯 보인다. 하지만 우연히 재즈바에 들른 여주인공과 그녀의 남편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잊을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무엇이 옳은 길인가. 그녀는 별이 되어 영원히 그의 곁에서 멀어졌다. 물론 그는 나중에 늙고 병들어 죽는 순간에서야 그녀 곁으로 가게 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내가 그였다면 어땠을까. 나라면 그 별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오디션장으로 이끄는 대신,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 곁에 머물며 다른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다른 방식으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줬을 것이다. 그녀라는 별을 비추기 위해 어둠이 되기보다는, 그 별에서 함께 손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 내겐 더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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