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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온전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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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Sep 23. 2019

내 기억 속 그 바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찾은 소중한 장소에서

     


“아저씨, 대천에 바다가 있나요?”

서울역 매표소 직원은 황당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럼 대천이 바다가 아니면 뭐게?”


고등학교 2학년, 이유는 잊었지만 바다가 보고 싶었다. 친한 친구와 함께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다.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매표소 앞에 서서 역 이름들이 적힌 작은 판들을 보았다. 그중 대천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왠지 저기가 바다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매표직원에게 대천에 바다가 있냐고 물어보았고 바다가 맞다는 대답에 표를 끊고 기차에 올랐다. 아마도 가장 싼 비둘기호가 아니었을까 싶다. 친구와 나는 좌석도 없는 입석으로 기차가 이어지는 통로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며 3시간 가까이 여행을 했다. 지금이야 담담하게 말하지만, 처음으로 어른들 없이 떠난 여행이 얼마나 설레면서도 두려웠을지.


기차가 멈추고 우리는 아주 낯선 시골역에 내려섰다. 숙소나 식당으로 관광객을 데려가려는 호객꾼들이 우리를 잡아끌까 불안해하며, 마치 이 동네 사람인양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으로 따라갔다. 버스정류장에서 사람들을 따라 욕장행이라고 써 붙인 버스에 올랐다. 다소 복잡한 시내를 지난 버스는 넓은 논밭에 몇 번 서더니 삼십여 분을 달려 욕장에 우릴 내려주고는 떠났다.


지금까지도 내가 기억하는 첫 바다였다.


대천이라는 말처럼 그 바다는, 그야말로 뻥 뚫린 망망대해였다. 뭔가 막혔던 가슴이 펑 뚫리며,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친구와 나는 손을 꼭 잡았다. 그때만 해도 대천 해수욕장 주변은 해송밭이었고 우린 그 어딘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거구나, 이게 바다였구나. 안도의 숨을 쉬었다. 서울에서 참 멀리도 와 버린 기분이었다. 우린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 바다를 보러 그리 멀리 왔구나. 허무하면서도 뿌듯 한 기분. 돌아가면 힘든 고3 생활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저 바다를 보니,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른들은 힘이 들 때 바다를 보러 오나,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대천은 '내 바다가 되었다. 그 후 대학에 들어갔고 힘이 들거나 지칠 때면 기차를 타고 혼자 대천에 가고는 했다. 왜인지 모두가 좋아하던 동해보다는 서해의 그 바다가 나는 좋았다. 하나둘씩 욕장 주변으로 가게들이 생겨났고, 어느 해에는 큰 놀이시설이 들어오기도 했다. 스무 살, 대학 친구와 함께 대천을 찾았다. 그곳은 젊은이들에게 환락과 유흥의 바다로 유명했고, 나도 그렇게 젊음을 소비했다. 그 밤, 친구와 해변에 앉아 맥주를 마시다 목포에서 온 고3 남자애들을 만나게 되었다. 해변에 둘러앉은 많은 사람들처럼 우리도 같이 술을 마시며 밤새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처음 만난 사이에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을까, 하지만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할 얘기가 많았던 것 같다. 결국 해가 떠오를 때까지 떠들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삐삐 번호를 주고받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고, 한 달쯤 지난 후 우리는 약속대로 다시 여름의 대천에서 만났다. 신기하게도, 그때 우리들이 만나 무슨 얘길 했는지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대학생이던 우리와는 달리 목포라는 먼 곳에서 공고 졸업을 앞두고 살아가던 그들과의 추억은 아쉽지만 거기서 끝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나는 해마다 대천에 갔다. 기차를 타거나 때론 고속버스를 타고, 지금의 남편과는 처음으로 차를 몰고 가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20대의 내 방황도 끝이 나는 듯했고, 꽤 오랫동안 그 바다를 잊고 살았다. 세상엔 너무나 많은 바다가 있었고, 솔직히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수십 배 더 아름다운 바다들을 보며, 대천을 완전히 잊고 말았다. 횟집과 조개구이, 술집들이 즐비한 기억 속 바다는 어두웠고, 뻘에 묻혀 있었으며, 해가 뜨는 아름다움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떼어낼 수 없는 무엇처럼, 그곳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는, 버려진 개처럼 말이다.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안면도로 여행을 떠났다. 23일 캠핑을 하려던 계획은 캠핑장에 도착 후 강풍과 풍랑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예보에 수포가 되었다. 급하게 다른 숙소를 구했고, 토요일 아침, 거짓말처럼 해가 비치자 여기까지 온 김에 대천 스카이바이크를 타러 가자고 결정했다. 하지만 가는 도중 바람이 거세지더니 결국 대천에 도착했을 때는 강풍과 함께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스카이바이크는 운행을 중단했고,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해변가를 운전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저 멀리 창밖으로 어두워진 바다를 보며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으로 올라오는 길, 해가 다시 비추며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이 푸르게 변했다. 다시 돌아가 바닷가를 거닐고 싶었지만, 이미 고속도로에 올라탄 후였다. 막히는 도로를 뚫고 돌아오는 길, 몇 번이나 비가 내렸다가 그치고,

바람이 거세게 불다가 고요해지고, 해가 나왔다가는 다시 어두워졌다. 창을 통해 바라본 그 변화가 마치 내 삶 전체를 보여주는 듯했다.


처음 대천에 가고, 20여 년이 흘러, 이제 나는 가족들과 함께 그곳에 갔다. 아이들은 바이크를 타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제 다시는 대천에 오지 않겠다고 투덜거린다. 그래, 다음엔 더 좋은 곳으로 가자, 말하면서도, 아마도 꽤 이른 시일 안에 다시 내 바다에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날은 열일곱 살의 어느 날처럼 밝은 햇살이 가득하고, 반짝이는 물결을 가득 보여주는 내 바다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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