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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Sep 23. 2019

당신의 뒷모습

어쩌면 나의 뒷모습일지도 모를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40대의 평범한 증권 중개인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홀연히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사라진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살아오다, 모든 것을 버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곤 타히티섬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다 병에 걸려 죽는다.

이 책에는 버릴 수 없는 예술가로의 열망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열망을 가진 한 남자의 고뇌가 잘 묘사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가족을 떠나는 스트릭랜드가 하고 싶었던 말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지금까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열심히 돈을 벌어다 줬다. 그 돈으로 아내와 아이들은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편하게 살았다.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 나는 이제 남은 삶을 나를 위해서만 살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나를 찾지 마라.’     


대부분 남자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며 한평생을 보낸다. 물론 어떤 여자 역시 그렇게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얘기를 하기로 하자. 남자들은 스스로 여자들을 그런 사회 속에서 배제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한마디로 ‘내가 벌고 너는 집에서 내가 가져다준 돈으로 가정을 지켜라.’ 내지는 ‘사회는 너무나 험난하니 내가 당신을 위해 대신 희생하겠소.’라는 논리를 펼쳐온 것이다. 무엇이 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어떤 위대한 학자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역사 속에서 어떤 패턴처럼 굳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먹여 살리고, 그게 지치고 힘든 순간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다른 여자를 찾거나, 그도 저도 안 되면 비겁하게 어딘가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세상엔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그런 A, B, C, D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이 오면 도망칠 준비를 한다. 그리고 핑계를 댄다. 가족 때문에, 직장 때문에, 세상 때문에 그러하다고.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삶이 되었든 최선을 다해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래서 인류는 그런 사람들을 위인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위인의 발치에도 못 닿는 인간이기에, A, B, C, D 들에게 위인이 되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가정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일만이라도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사소한 일조차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요즘이기는 하다. 그래서 ‘존경’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회사에 가려고 현관을 나선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어떤 안쓰러움을 느낀다. 지난 15년, 남편은 쉬지 않고 일했고, 나는 가끔 그 고마움을 잊었다. 요즘 남편 회사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다. 남편과 잘 맞지 않는 스타일 때문인지 야근이 잦아지고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밤늦게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남편의 대화 속에서 내가 잘 모르는 어떤 말투와 느낌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남편 역시 힘든 회사 생활과 아이들과의 마찰 때문에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우린 서로 가끔 미친 듯 미워하기도 하지만, 나는 남편을 존경하기로 했다. 적어도 그는 아직까지 힘든 삶에서 도망을 치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나 역시 나 스스로를 존경해야 한다. 나 또한 숨거나 도망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견뎌내고 있으니 말이다.     

 

타히티에 정착한 스트릭랜드는 원하는 대로 마음껏 그림을 그리며 행복한 여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가 그럴 수 있기까지는 그를 돌보며 먹이고 입혀준 섬의 여자가 있었다. 만약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그 무인도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다 죽어가야 했다면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결국 그가 바란 건 원하는 일을 하며, 그런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을 돌봐주는 누군가이지 않았을까? 그것이야말로 모든 인간이 바라는 누군가의 모습일 것이다. 그건 배우자가 될 수도, 부모나 스승,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만약 그 누구도 찾지 못했다면, 나 자신이 나 스스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도 있다.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격려해주고, 이해해주고, 스스로를 돌보며 믿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존경할 만한 누군가를 만나는 가장 쉬운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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