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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an 01. 2020

성게의 '반전'

성게는 행운의 징표이다.

2019년 첫날 다이어리에 적었던 글을 읽어 보았다. 2019년 마지막 날에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쓰여 있었다. 가만히 한 해를 뒤돌아보았지만 자신 있게 그래, 정말 행복했어, 라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시작은 좋았던 것 같다. 새로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도 있었고, 적어도 반년 정도는 글에 집중하며 책도 꾸준히 읽었고, 가족과도 무난하게 지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매일 쓰던 다이어리를 쓰지 않기 시작하고, 손에서 책을 놓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보단 내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소설은 써지지 않았고, 꿈은 저 멀리 도망친 듯 보였다.    

  

무슨 일이든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았다고 기억되기도 한다. 지난해를 안 좋게 기억하게 된 건 아마도 좋지 않았던 ‘끝’ 때문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를 따뜻한 곳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에 몇 달 전, 베트남 나트랑 여행을 예약했다. 들뜬 마음에 출발한 여행은 처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첫 이틀을 묶기로 한 시내 호텔은 예상보다 별로였고,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의 분위기도 80년대 오래된 쇼핑몰 같았다. 향신료는 너무 강했고, 아이들은 먹을 게 없다고 투덜거렸다. 그런 모습에 남편은 화를 냈고, 맛이 없으면 안 먹을 수도 있다고, 아이들을 변호하던 나는 결국 기분이 상해버렸다. 여행까지 와서 투닥거리는 남편과 아이들을 보니, 솔직히 짜증이 났다.

숙소로 돌아와 가져온 햇반과 김으로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베트남의 싼 맥주를 마시며 기분을 내려던 계획을 접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엔 아침 일찍 놀이동산에 가기로 했으니 차라리 잠이나 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일어나 따뜻한 날씨에 신이나 놀이동산으로 출발했다. 우선 워터파크에서 물놀이를 하고 놀이기구를 타면서 종일 놀 계획이었다. 물론 계획만 앞섰지만 말이다. 일단 워터파크는 우리나라에 비해 시설이 많이 열악했다. 물론 베트남이 그리 발전한 나라는 아니니 그럴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불편하고 지저분한 탈의실과 샤워실을 쓸 생각을 하니 시작부터 암담했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전용 해변으로 향했다. 허벅지 높이까지 물속을 걸어가다 갑자기 엄청난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무언가 발을 찔렀다. 조심조심 걸어 나와 주저앉아 보니 엄청난 가시들이 오른발바닥과 발등에 박혀 있었다. 뽑으려 해도 산산이 부서져 버릴 뿐이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오던 남편을 향해 사람을 불러오라고 소리쳤다. 가시가 박힌 부분이 금세 검어지면서 오른발 전체가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남편이 안전요원을 불러와 오토바이를 타고 의무실로 갔다. 그 사이 고통은 커지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말도 통하지 않고, 시설도 낙후돼 보이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게 아닐까. 그 와중에도 다리를 보며 겁에 질린 아이들 때문에 아픈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마음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의사도 아닌 간호사들이 발을 소독하고 자기들끼리 떠들어 대는 데 불안한 마음은 더 커졌다. 영어를 하는 직원이 도착했지만, 자연적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워터파크 전용 비치에서 일어난 일인데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에 손짓 발짓 해가며 항의를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아니 그보단 이 발이 어찌 될지, 이제 시작된 여행인데 너무 화가 났다.


2주 후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에 한숨이 나왔다. 이틀 후면 크리스마스였고, 따뜻한 곳에서 즐거운 연말을 보내려고 떠나온 여행이었는데 생각할수록 허무했다. 성게 가시는 원래 잘 빠지지 않고 그대로 녹아 없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그날 밤 숙소에서 검색을 하고서야 알게된 사실이다. 재수도 없지, 무려 30개나 가시가 박혔다. 임시조치로 몇 개 뽑아내기는 했지만 깊게 박힌 가시는 뺄 수가 없어 진통제를 먹고 참아야 했다. 인터넷에서 알아낸 방법으로 식초를 푼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진통제를 먹으며 남은 4일을 버티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걷는 게 불편하다. 휴가는 망쳤고, 연말에 세워둔 계획들도 망쳤다. 그 와중에 신춘문예는 실패로 돌아갔다. 물론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기분이 울적한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얼마 전 우연히 들른 절에서 2020년 운세표를 보았는데 대흉년이라는 글을 보았다. 아, 이보다 더 나빠진다는 것인가!


이런저런 이유 때문일까, 2019년이 그다지 행복하게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끝이 좋지 않아서, 자꾸 지난 시간까지 나쁘게 기억되는 것일까. 아픈 발을 주무르며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데 새해가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씁쓸한 기분이 앞섰다.


그럼 올해는 어떨까. 12월에 여행을 가지 않으면 괜찮을까? 다신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성게 따위에 찔릴 일도 없을까? 연말에 신춘문예에 응모하지 않으면 새해부터 실패의 자괴감은 들지 않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면서 조용히 살아가면 정말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까? 그럼,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2020년이 될까?     


잘 모르겠다. 왠지 세상은 내가 아무리 조심을 해도 나에게 태클을 걸어올 것 같고, 그렇다면 나름대로 준비를 해야 할 텐데 방법을 모르겠다. 이렇게 새해 첫날 다시 글을 쓰자 다짐하며, 한편의 ‘불평 글’을 쓰는 것으로 작은 반항을 해본다. 괜찮을 거라고, 성게 가시는 대흉년을 막아 주는 액땜이었을 거라고, 신춘문예보다 더 좋은 상을 받을 거라고 알려 주는 징표였을 거라고 믿어 본다. 세상에 성게 가시에 찔려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작가라면 이런 경험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발에 총상을 입은 헤밍웨이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억지스럽고 우습지만 스스로 나를 위로하는 새해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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