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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ul 10. 2020

장수 고양이의 비밀은?

제 멋대로 사는 고양이의 묘생


우리 집에는 열네 살 고양이가 산다. 검정과 흰색 털이 섞인 흔한 코숏이다. 그래서 이름이 모카다. 모카커피의 모카.

2006년 잠시 외국에 머물다 돌아왔을 때, 고양이가 너무 키우고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과 <파리에 간 고양이>의 똑똑한 주인공 노튼 때문이었을까. 이야기 속의 고양이들은 고고하고 자유로웠으며, 주인과 산책이나 여행을 다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골골거리며 애정을 표현하는 사랑스러운 존재로 그려졌다.

소설가를 꿈꾸던 나에게, 집필실 책상 위에서 잠든 고양이의 모습은 한 편의 완벽한 그림처럼 새겨졌다. 남편을 설득해 좁디좁던 전셋집 한편에 고양이 화장실을 마련하고 사료와 간식을 사며 존재할지 모를 소설가로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훗날 돌아보니 내 과거에 남겨진 어떤 사건이 고양이를 원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무렵, 우리 집은 다세대 주택 2층 방에 세를 살았다. 어느 날 학교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와 대문을 열었는데, 쓰레기통 옆에서 작은 새끼 고양이가 힘없이 울고 있었다. 동물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주변에 있던 종이상자에 고양이를 담아 대문 옆에 숨겨두었다. 우선 학교에 다녀와 방법을 찾아봐야겠고 생각했다. 주인집 눈치가 보여 상자를 1층 문 안에 들여놓기도 어려웠고, 2층으로 올라가 늦게까지 일하고 온 엄마에게 고양이를 키워도 되는지 물어볼 용기도 생기지 않았다. 우리 형편에 애완동물을 키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다행히 상자는 제자리에 있었지만, 새끼 고양이는 더는 울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작고 딱딱하게 굳은 그 모습이 내가 본 첫 번째 생생한 죽음이었다. 그 후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집으로 올라가 조금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난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웬만해선 울지 않았다. 울지 말아야 1년에 한 번이라도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었고,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테리우스 같은 멋진 왕자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나절 해프닝으로 작은 고양이는 내 기억 속에 묻혔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작게 울리던 울음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을 버렸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라져 버린 어미를 찾던 그 울음소리와 작은 생명을 지키지 못했던 어린 시절 나에 대한 원망까지도 말이다.





나는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했고, 그건 이제 원한다면 내 마음대로 고양이든 강아지든 하다못해 이구아나나 귀뚜라미라도 키울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나의 첫 애완동물로 망설임 없이 고양이를 선택했다.


2006년 봄, 고양이 입양 카페에 가입해 마음에 드는 고양이를 물색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나 지하철로 20분 거리에서 구조된 3개월가량의 암컷 길냥이를 만나게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던 내내 울부짖던 녀석의 성격이 예상보다 만만치 않으리라는 걸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나는 그저 인형 같은 외모의 작은 고양이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모카와 나의 길고 긴 애증의 역사.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혹시 애완동물 키우세요?

나는 답한다. 네, 고양이요. 근데 성격이 엄청 까칠해요. 주인인 저한테도 잘 안기지 않고, 맘에 안 들면 발톱으로 할퀴어서 피가 뚝뚝 떨어지기도 해요. 게다가 털은 얼마나 빠지는지, 제가 검정 옷을 좋아하는데 털 떼느라 보낸 시간이면 위대한 명작 한 편 정도는 쓰지 않았을까요?


그렇다. 모카를 정의하는 단어는 바로 ‘까칠’이다. 아니 까칠이라는 단어는 귀엽다. 뭐라 해야 할까. 아무튼, 지독하게 민감하고 겁이 많고 예민하고 게다가 밤이면 큰 소리로 다. 야행성인 모카는 낮 동안 내내 자고, 밤이면 온 집을 뛰어다니며 크게 울어대, 나는 밤마다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유난히 잠귀 밝고 소리에 예민한 나에게 모카와의 밤은 악몽이었다. 그럴 때면 뭐 한다고 저렇게 애교는커녕 성격 나쁜 고양이를 데려와 고생인지 내 발등을 찍고 싶었다. 소설가들은 밤새 작업을 해서 고양이가 울어도 신경을 안 쓰거나, 넓은 집 서재에 들어가 고양이가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하는 건지,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가야 했고, 밤에 푹 쉬지 않으면 다음 날을 망치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었다. 회사 갈 준비를 마치고 나와보면 모카는 새벽 내내 좁은 집과 내 몸 위를 뛰어다니느라 지쳤는지 태평한 얼굴로 배를 드러낸 채 잠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현재에도 여전히 모카는 나와 함께다. 물론 그사이 나에겐 다양한 삶의 파도가 몰려왔다 흔적만 남긴 채 사라져 갔다. 회사는 오래전 그만뒀고, 남편과는 크게 다투기도 했으며, 이사는 또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그때마다 모카는 차 안 이동장 안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다 새로운 집에 들어오면 어딘가로 숨었다 2~3일 후에나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하도 털이 빠져 미용을 하러 동물병원에도 갔지만 의사 선생님조차 두 손을 들고 그냥 데려가라고 했다. 선생님 팔등에 남은 핏자국을 보며 나는 군말 없이 돌아 나와야 했다. 그냥 털 띄는 돌돌이 테이프를 상자째 사두는 거로 만족할 뿐이었다. 어쩌다 산 비싼 가구는 모카의 스크레쳐가 되었고, 구멍 난 의자와 망가진 소파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어렵게 임신을 했고 쌍둥이 딸이 태어나 어느새 9살이 되었다. 나의 딸들이 생겼을 때부터 모카는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카가 늙어가면서 성격이 나아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람도 쉽게 바뀌지 않듯, 고양이 역시 그렇다.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모카와 함께 자랐지만 애교 없는 고양이에 질려버린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의 소원은 다른 애완동물을 키우는 거다. 매일 친칠라를 키우겠다, 카멜레온을 키우겠다, 강아지를 키우겠다, 노래를 부르며 내 인내심을 시험한다. 그럴 때면 나는 우리한텐 모카가 있잖아. 모카가 죽고 나면, 그래야 다른 동물도 키울 수 있어,라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댄다.

하지만 그건 확실한 ‘사실’이다. 모카가 다른 동물을 가만 둘리 없다. 지난 세월, 동물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몇 마리의 동물들이 우리 집을 거쳐 갔다. 다른 고양이들과 놀러 온 강아지들, 길 잃고 헤매던 패릿까지. 그때마다 모카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주 싫어한다.’

고양이 하악질의 결정체를 볼 수 있다.

그러니 모카가 죽기 전까지 다른 동물을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작년 어린이날에 들어온 거북이 2마리가 지금 거실 수족관에서 헤엄치고 있기는 하지만 모카는 거북이에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모카는 오래 살 것이다. 이제 고작 열네 살, 사람 나이로 칠십 이살일 뿐이다. 앞으로 십 년쯤은 거뜬하다.


나는 그 이유를 모카가 ‘자기 마음대로 살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잔다. 먹이를 위해 누군가와 경쟁을 할 필요도, 불안하게 잠자리를 헤맬 필요도 없고, 주변엔 언제나 깨끗한 화장실과 물이 있다. 하다못해 주인한테 애교를 부릴 필요도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조차 모카는 아이들을 피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높은 책장 위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영악한 고양이가 아닌가. 또한 이 얼마나 완벽한 삶인가.


나는 가끔 그런 모카가 얄밉다. 어떤 재벌보다 평화롭고 편한 삶이다. 재벌도 돈을 벌기 위해 싫은 일을 하고 그 돈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감옥에도 가는 세상인데. 모카는 그저 나에게 싫은 소리 몇 마디를 들을 뿐이다.

제발 그만 좀 울어, 잠 좀 자자!     



모카가 처음 구조됐을 때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고 한다. 모카가 유일하게 먹는 인간 음식이 바로 치킨이다. 참치캔을 통째로 줘도 관심 없는 고양인데 치킨이라면 가끔 손톱만큼 받아먹는다. 아마도 쓰레기를 뒤지며 살던 시절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치킨이 아니었을까.

홀로 거리를 헤매며 살던 어린 시절이 모카를 그렇게 예민하고 겁이 많은 고양이로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의 유년 시절 역시 외롭게 버티던 시간이었다. 홀로 아이들을 키워야 했던 엄마는 언제나 곁에 없었고, 가난은 그런 나를 더욱 움츠려 들게 했었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까칠하다. 나이가 들어서야 그런 나를 인정하게 됐다.




나는 모카가 장수하기를 바란다. 말로는 왜 이런 고양이를 키웠는지 후회하지만 그녀와 나는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지난 십년 넘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지켜본 유일한 생명체. 이제는 마치 전쟁터를 함께 헤치고 살아난 전우 같은 의리마저 생겼다. 누구에게도 들키싶지 않 것까지 보고만 사이지만 모카가 고양이라는 이유로 평생 입을 다물 것을 알기에, 나는 더욱 모카를 미워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모카의 죽음이 두렵다. 오래 살아서 앞으로의 내 삶을 지켜 봐주면 좋겠다. 나의 딸들이 독립하고 자신만의 애완동물을 키우게 될 때까지 살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내 꿈이 이뤄져 소설가가 되고, 내 집필실 책상 위에 누워 한가하게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

꿈꾸던 그림이 현실이 되는 날까지, 아주 오래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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